HOME > 정보게시판 > 특별기고
작성일자 : 2009년 10월 01일        조회 : 23208        작성자 : 관리자     

그랜드 바겐 날려버릴 특사파견
<통일뉴스 기고문> 한호석 tongil@tongilnews.com
한호석 (재미 통일학연구소 소장)


상황변화에 역행하는 엄한 대통령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있는 중앙공원(Central Park) 동쪽 68가(街)에는 고급사교모임이 열리곤 하는 ‘해럴드 프랫 하우스 앤드 피터슨 홀(Harold Pratt House & Peterson Hall)’이라는 고풍스런 석조건물이 있다. 2009년 9월 21일 그 곳에서 외교관계협의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주최한 오찬간담회가 열렸다. 1921년에 창립된 외교관계협의회는 외교정책과 국제관계를 다루는 권위있는 비정부기관이다.

오찬간담회에 초대된 연사는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간담회 진행은 클린턴 정부 시기에 재무장관을 지낸 외교관계협의회 공동의장 로벗 루빈(Robert E. Rubin)이 맡아보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 제목은 ‘차세대 한미동맹의 비전과 과제’였다.

주최측인 외교관계협의회가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내용을 이튿날 자기 웹싸이트에 요약보도한 기사의 제목은 “더욱 엄해진 대북태도(A Stricker Posture toward North Korea)”로 되어있다. 그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미국인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에서 듣고 싶어했던 것은, 그가 한미동맹을 찬양하고 한미동맹의 강화를 역설한 진부한 내용이 아니라, 최근 급변하는 상황에 대처하여 그가 어떠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태도가 이전보다 더 엄해졌다고 지적한 보도기사 제목은, 요즈음 미국의 대북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황변화에 역행하여, 남측의 대북관계에서 이전보다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그의 고집과 무지를 은근히 비꼰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강경한 연설은 정동영 의원의 온건한 연설과 뚜렷이 대조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오찬간담회에서 연설하기 사흘 전인 9월 18일 정동영 의원은 워싱턴 디씨에 있는 전국언론협회(National Press Club)가 주최한 연설회에 출연하였다. 기삿거리가 되는 사람(Newsmaker)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그 연설회는 미국 언론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초청연설회다. 주최측인 전국언론협회는 이튿날 자기 웹싸이트에 정동영 의원의 연설을 요약보도하였는데, 제목은 “남측 인사, 북측이 대미관계 정상화를 바란다고 말하다(S. Korean Says N. Korea Wants Normalized Relations with US)”라고 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찬간담회 연설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의 핵심부분을 폐기하면서 동시에 북한에게 확실한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국제지원을 본격화하는 일괄타결, 즉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한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 23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도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언급하였으며, 같은 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정상회담에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관계협의회 연설, 한중 정상회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2009년 6월 16일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6자회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며,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에도 6자회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이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불쑥 꺼내든 까닭은 무엇일까?

충격받은 국무부의 묵살발언

원래 일괄타결이라는 해법은 북측이 미국에 제안해온 것인데, 북측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양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이다. 그러한 북측의 주장에 맞선 미국 국무부는 북측이 핵포기를 선행하면 일괄타결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테면, 2009년 7월 19일 서울을 방문 중이던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커트 캠벨(Kurt Campbell)은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핵포기 조치를 취한다면 포괄적 타결(comprehensive package)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2009년 7월 22일 태국 푸켓(Phuket)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국무장관도 “북한이 비가역적인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과 동반자들은 보상과 북미관계 정상화 기회 등이 포함된 타결(package)를 진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꺼내놓은 것은 양자회담이 아니라 6자회담을 통해서 추진하는 일괄타결이다. 물론 북측이 말하는 일괄타결의 내용과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일괄타결의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일괄타결을 양자회담을 통해서 추진하느냐 아니면 6자회담을 통해서 추진하느냐 하는 추진방식을 비교해 보더라도 하늘과 땅만큼 커다란 차이가 있어서 서로 절충하거나 타협할 여지가 없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쑥 꺼내놓은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제안이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북측과 미국의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양자회담에서도 이루어내기 힘든 일괄타결을, 이해관계의 충돌양상이 훨씬 더 복잡한 6자회담에서 이루어내겠다는 제안은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 제안이 이처럼 말이 되지 않는 억지주장인데도 이명박 대통령은 외교관계협의회 연설, 한중 정상회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억지주장을 되풀이해서 강조하였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6자회담을 통해서 일괄타결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일반상식에 가까운 정보를 정말 몰랐던 것일까? 이명박 대통령이나 청와대 외교안보관리들이, 6자회담을 통해서 일괄타결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내리지 못할 만큼 무지와 혼돈에 빠져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들은 6자회담을 통해서 일괄타결을 추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러한 억지를 부린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이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꺼내놓은 날,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클린턴 국무장관과 맨해튼에서 회담을 가졌다. 그 회담에 배석한 커트 캠벨 차관보는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 제안이 유명환-힐러리 회담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는 그 제안을 모른다고 있다고 거듭 말하며 언급을 회피하였다. 커트 캠벨 차관보의 말에서 드러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클린턴 국무장관을 만난 회담에서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이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 제안을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는 말은, 그 제안이 외교통상부에서 작성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9월 23일 뉴욕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 중이던 김성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기자들 앞에 나서서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추가로 설명한 것을 보면, 그 제안을 작성한 장본인은 김성한 외교안보수석인 것이 분명하다.

둘째, 6자회담을 통한 일괄타결 추진제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 국무부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발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연합뉴스> 2009년 9월 23일자 관련보도는 그 제안에 대해 일각에서 “한미 간의 미묘한 시각차”가 있다고 지적하였음을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뉴욕타임스> 2009년 9월 21일자 기사는, “이 씨의 제안으로 미국은 놀라움에 사로잡혔다(Mr. Lee’s proposal caught the United States by surprise.)”고 썼다. 이 말은 이명박 대통령이 불쑥 중대사안을 발표하자 국무부 관리들이 놀랐다는 뜻이다.

자기들과 사전협의도 하지 않은 중대사안을 이명박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발표한 것에 대해 국무부 관리들이 놀라움과 불쾌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테면, 2009년 9월 22일 국무부 대변인 아이언 켈리(Ian Kelly)는 기자들에게 “외교관계협의회에서 행한 이 대통령의 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그의 정책이기 때문에 내가 특별히 논평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의 소견(remark)이었다”고 말했고, 9월 23일에는 “나는 다른 나라 지도자들의 발언에 대해 논평하지 않는다. 그의 제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에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부 관리들이 얼마나 화를 냈는지 그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아이언 켈리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괄타결 제안을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묵살해버렸고, 이명박 대통령은 망신만 당했다. 남측 대통령이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묵살발언으로 망신을 당해도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하는 것이 한미관계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왜 미국 국무부와 사전협의도 하지 않고, 일괄타결 추진제안을 꺼낸 것일까? 그 내막을 알려면, 먼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방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불쑥 꺼내놓은 일괄타결 추진제안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 추진에 다급하게 대응한 것이기 때문이다.

묘한 엇박자 내는 백악관과 국무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방향은 혼란스러워 보인다. 6자회담을 재개하기 전에 먼저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이 발표되는가 하면,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한 뒤에 6자회담 틀 안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기존 방침도 함께 강조되기 때문에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스티븐 보스워즈(Stephen W. Bosworth)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베이징, 서울, 도쿄를 순방한 직후인 2009년 9월 11일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 필립 크롤리(Philip J. Crowley)는 북측과 양자회담을 할 준비가 되었으며, 양자회담의 방식과 장소는 앞으로 2주간 안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는데, 그 짤막한 발언은 6자회담 틀 안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인지 아니면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발표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나흘 뒤인 9월 15일 클린턴 국무장관은 국무부 청사에서 우루과이 대통령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진행하면서 보스워즈 특별대표가 베이징, 서울, 도쿄를 순방한 결과를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에서 “북측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는 방안으로, 6자회담의 목적이 무엇인지 또 상응대가와 보상이 무엇인지를 북측에게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하는 방식도 찾아볼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문제를 중시한 발언이다. 2009년 9월 27일 아시아 다섯 나라 순방길에 베트남 하노이에 들른 미국 국무부 부장관 제임스 스타인벅(James B. Steinberg)은 기자회견에서 북측의 6자회담 복귀를 강조하였다.

미국 국무부에서 이처럼 양자회담 추진방침과 6자회담 복귀요구가 뒤섞여 나오는 것을 두고 양자회담과 6자회담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방침을 정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상황변화를 정밀분석해보면 그러한 기존 방침이 배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자-6자회담 병행추진방침을 배제하고 있는 상황변화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은, 필립 크롤리 차관보가 위의 발언을 꺼내놓기 훨씬 이전부터 물밑에서 논의되어왔다. 그 새로운 방침을 조용히 논의한 장본인은 오마바 대통령이다. 미국 국무부가 양자회담 추진방침과 6자회담 복귀요구를 뒤섞어 말하고 있는 혼란스러운 모습 뒤편에는, 새로운 방침을 붙들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미국 언론이 슬쩍 비치고 지나간 그의 모습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하자는 방침의 변화를 요구하였고,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적 결단을 내려 클린턴 전 대통령을 사실상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파견함으로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변화요구에 부응하기 시작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10월 중에 명실상부한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러한 특사파견이야말로 오바마 대통령이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결정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과 양자회담과 6자회담을 병행하여 추진하는 기존 방침이 서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문제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양자-6자회담 병행추진방침은 양자회담을 6자회담 틀 안에서 진행하는 경우에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와 다르게, 양자회담을 6자회담 틀 밖에서 진행하면, 다시 말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여 양자회담을 시작하면, 양자-6자회담 병행추진방침은 자동적으로 소멸된다. 양자회담에서 먼저 합의한 사항을 나중에 6자회담에 가져가서 통보하고 형식적인 합의를 끌어내게 될 것이므로, 설령 6자회담이 재개된다 해도 그것은 존재의의를 잃어버린, 있으나 마나 한 회담으로 전락할 것이다. 따라서 북측과 미국이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갖는 날부터 6자회담은 사실상 폐기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이 결정된 것은, 부시 전 대통령이 집착했던 6자회담 추진방침을 오바마 대통령이 사실상 포기하였음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가 좀 복잡해진 까닭은, 오바마 대통령이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결정하고서도, 그 방침을 명료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그 새로운 방침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여러 각료들과 토의하여 새로운 방침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이 제임스 존스(James L. Jonse, Jr.)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제프리 베이더(Jeffrey A. Bader)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국장(Senior Director for Asian Affairs)과 상의하고 나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방침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두 차례나 만나 밀담을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은 까닭은, 그처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새로운 방침을 택해야 하였기 때문이다.

6자회담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오바마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였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9월 21일 클린턴 국무장관이 유엔총회에 참석 중인 남측,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들을 차례로 만난 연쇄회담에 배석하였던 커트 캠벨 차관보는 기자들에게 회담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클린턴 국무장관과 다른 나라 외무장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와 후계문제가 “불확실한 때”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으며, 북측 내부의 사태전개에 긴밀히 조율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음을 합의했다고 밝혔다. 커트 캠벨 차관보의 말에 따르면, 클린턴 국무장관은 ‘건강이상설’과 ‘후계불안정설’ 따위의 정보를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그러한 대북정세인식은, 하루 전인 9월 20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씨엔엔(CNN)>의 대담프로그램 ‘연방국가(State of the Union)’에 출연한 오바마 대통령이 언론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대북정세인식과 생판 다르다. 그 대담방송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정보를 보고받은 뒤부터 ‘건강이상설’, ‘후계불안정설’ 따위의 정보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한 클린턴 국무장관이 다른 나라 외무장관들과 만난 자리에서 ‘건강이상설’과 ‘후계불안정설’을 논하였던 바로 그 날 밤에 방영된 미국 텔레비전방송 <씨엔엔>의 대담프로그램 ‘래리 킹 라이브(Larry King Live)’에 출연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기가 2009년 8월 4일 평양에서 만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근황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만난 그는 빈틈 없는 태도를 보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건강이 좋았고, 통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으며, 어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겠는지 관심을 표명한 것이 분명하였다.” 명백하게도, 백악관과 국무부는 대북정세인식에서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정보에 근거하여 재정립된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정세인식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인 클린턴 국무장관의 대북 정세인식과 커다란 격차를 보이는 흥미로운 현상은,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방침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각료들과 상의하지 않고 자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였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2009년 9월 22일 뉴욕에서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처음 만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회담 직후 기자들 앞에서 자기는 미국이 북측과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계획을 언론보도를 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6자회담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일본 총리에게 통보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미국 국무장관과도 상의하지 않은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방침이 일본 총리에게 통보될 리 만무하다.

대통령 집무실은 왜 조용히 움직였을까?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6자회담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각료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까닭은 무엇일까?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은, 6자회담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을 물고 늘어지면서 자기를 겨냥한 비난수위를 더욱 높여갈 미국 내의 정적들에게 공격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방책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가뜩이나 건강보험 개혁문제를 놓고 정적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판인데, 6자회담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새로운 방침까지 공개되는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정적들로부터 북측에게 양보만 한다는 비난공세까지 받을 수 있다.

둘째, 오바마 대통령의 독단적 결정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6자회담이 재개되어야 한반도 정세변화에 개입할 수 있는 중국을 의식한 방책이었을 것이다. 북측과 미국이 핵문제를 놓고 격돌할 때마다, 사실 명목상이었지만 중재자로 자처해왔던 중국은, 두 나라가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시작하면 명목상 중재자의 지위와 역할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중국이 6자회담 재개에 집착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북측이 6자회담에 복귀하도록 대북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해왔는데, 이제는 자기들이 언제 그런 요청을 했느냐는 식으로 태도가 돌변하여 6자회담을 저버리고 북측만 상대하려 한다는 중국의 불만은 미중관계에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국내외에서 장애요인들이 조성될 수 있음을 예견한 오바마 대통령은 자기의 새로운 방침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고, 그 대신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여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함으로써 부시 전 대통령의 6자회담 추진방침을 사실상 폐기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클린턴 국무장관과 국무부 관리들은, 6자회담 틀 밖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명시적 지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6자회담 틀 안에서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기존 방침을 반복하면서 북측에게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담판의 필연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새로운 방침은, 6자회담 틀 밖에서 부상-차관보의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식으로 밋밋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는 10월 중에 대통령 특사를 평양에 파견하여 관계의 변화를 촉발시킬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평양에 특사를 파견하는 변화가 그 자신의 평양방문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있지만, 그 미지수는 사물의 한 쪽 측면에서 드러나 보이는 것이다.

북측의 견지에서 사물의 다른 쪽 측면을 바라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파견으로 양자회담을 추진한다는 말은 조미(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북측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를 통하여 양자회담을 추진하는 목적은, 이미 막을 내린 6자회담에서는 공개할 수도, 결정할 수도 없는 결정적으로 중대한 정치현안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담판을 통해 합의, 결정하려는 데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조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비핵화 문제와 철군 문제에 관한 담판이 벌어질 것인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오바마 대통령은 비핵화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고 다만 비핵화의 방법론에 대해서만 이견이 있을 뿐이므로,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합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 미국이 회담의제로도 올리지 못하도록 완강하게 반대해온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다.

미국의 역대정권들이 그처럼 완강하게 반대해왔기 때문에 북측과 미국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를 양자회담에서 논의해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담판을 벌여 철군문제를 일괄타결할 준비를 완료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상회담을 제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담판을 벌여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할 것이며, 주한미국군 철군협정을 체결하는 합의를 끌어낼 것이다. 그렇게 보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첫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주한미국군 철군을 가장 절박한 문제로 보고 있다.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베이징, 서울, 도쿄 순방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난 2009년 9월 8일은 64년 전인 1945년에 미국군이 인천에 상륙한 날이었다. 미국군의 한반도 상륙 64주년을 맞은 날, <로동신문>에는 ‘미제침략군의 남조선강점은 하루빨리 끝장나야 한다’는 제목으로 된 기명논설이 실렸다. 북측이 철군문제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그 논설의 일부를 옮겨적으면 이렇다.

“미군의 남조선강점은 조선의 통일을 가로막는 기본장애물이다. 조선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먼저 미군이 남조선에서 물러가야 한다. 미군의 남조선강점을 끝장내는 것은 조선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절박한 문제이다. 미군의 남조선강점이 끝장나면 우리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는 근본요인과 조선의 통일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제거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조국을 통일할 수 있는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다.”

위의 인용문을 과장어법이 담긴 수사(rhetoric)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자국 영토의 절반을 강점한 침략군이 없는 강성대국”을 건설하였음을 선포하기까지 불과 3년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주한미국군 철군을 가장 절박한 과업으로 여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면, 1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결정적인 담판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철군협정 체결합의를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둘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과 담판을 벌이는 자리에서 철군협정 체결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북측이 핵포기 공약을 전면적으로 이행하는 놀라운 일괄타결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담판에서 제시할 일괄타결안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철군협정 체결요구를 오바마 대통령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상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제안일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판이 어떠할 것인지를 예고해주는 비근한 경험담은, 2009년 7월 28일 미국 텔레비전방송 <씨엔엔>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부시 정부 1기에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Colin Powell)에게서 들을 수 있다. 그는 “그들(북측을 뜻함-옮긴이)은 내가 만나본 협상상대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힘겨운 협상상대였다.”

셋째, 오바마 대통령은 자기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2009년 9월 24일 유엔안보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주도한 가운데 핵확산 방지와 핵무기 감축을 공약한 결의안 제1887호가 채택된 것은,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에 따라 자국의 핵무기를 감축하면서 다른 4대 공인 핵보유국들에게도 핵무기 감축을 요구할 것임을 예고한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Guardian)> 2009년 9월 21일자 보도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을 대폭 감축하는 방향으로 핵무기 정책을 전면 재조정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나라들이 핵확산금지체제 밖에 존재하고 있으니, 4대 비공인 핵보유국인 북측,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그리고 핵개발에 바짝 다가선 이란이다. 중요한 것은, 4대 비공인 핵보유국 가운데서 비핵화를 공약한 나라는 북측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이 비핵화할 가능성은 없고, 이란이 이제와서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만일 2010년에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은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을 살려줄 정치지도자는 비핵화를 공약한 김정일 국방위원장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사상 초유의 비핵화 협정을 체결하면, 국제사회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전세계 비핵화 구상을 지지하는 여론이 들끓게 될 것이다.

넷째, 조미 정상회담이 순탄하게 열릴 것이라고 보는 낙관적 전망은 비현실적이다. 지금 오바마 대통령이 조미 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진 것은 그의 특사파견 결정밖에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서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조미 정상회담이라는 사변이 실제로 일어나기까지 예상치 못한 장애와 난관이 조성될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

그래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상회담 제안에 무응답으로 대응할 경우를 대비한 몇몇 조치를 미리 마련해두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조치들이 무엇인지는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009년 6월 12일 <나우 리퍼블릭(Now Republic)>, 9월 12일 <팍스 뉴스(Fox News)>가 북측의 제3차 핵실험 가능성을 보도한 것은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만일 북측이 미국군 첩보위성을 통해 제3차 핵실험 준비에 착수하였음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은밀히 통보한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요구를 즉각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1월 14일과 15일에 싱가포르에서 열릴 제21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길에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전격적으로 평양을 방문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북 특사파견 일정을 선행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기 전에 평양부터 먼저 방문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평양방문은 2010년에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대통령의 망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오면, 그 회담을 저지하려는 반대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 조미 정상회담을 격렬하게 반대할 세력은 미국 군부다. 그들은 조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주한미국군 철군협정이 체결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주한미국군 철군은 미국 군부에게 치명타가 되기 때문에, 미국 군부는 무조건 조미 정상회담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지미 카터(Jimmy Carter) 대통령 집권 시기에 미국 군부는 주한미국군을 3단계에 걸쳐 철군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철군방침에 강하게 반발하였고, 북측의 군사적 위협을 조작한 정보를 언론에 흘려주어 철군반대여론을 조성함으로써 결국 철군방침을 좌초시켰다.

이처럼 미국 군부는 여론공작이라는 교활한 수단을 동원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를테면, 요즈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 미국군을 증파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양분되었는데, 아프가니스탄 점령군사령관 스탠리 맥크리스털(Stanley A. McChrystal)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제출한, 추가파병의 필요성을 강조한 66쪽 짜리 전황보고서가 흘러나가 <워싱턴포스트>에 전문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미국 군부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추가파병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처럼 비공개보고서를 언론에 넘겨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데, 그러한 그들이 주한미국군 철군문제가 제기될 경우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아무도 모른다.

주한미국군 철군을 반대하는 세력은 미국 군부만이 아니다. 미국 군부보다 더 격렬하게, 필사적으로 주한미국군 철군을 저지할 세력은 이명박 정권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위관리들, 한나라당과 군부, 그리고 극우반공단체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특사파견이 자기들에게 어떠한 결과를 안겨주게 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특사파견을 불안과 초조 속에 지켜보게 될 그들은 조미 정상회담 개최가 철군협정 체결→3단계 철군→상호방위조약 파기로 이어질 것임을 예감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을 목숨처럼 귀중히 여기는 이명박 정권에게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는 재앙이다. 장차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가 평양에 도착하는 날, 자기들에게 닥쳐올 재앙을 미리 막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해체되는 것과 더불어 자신들도 몰락할지 모른다는 안보위기가 이명박 정권을 사로잡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갑자기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특사파견을 반대하면서 감히 백악관의 방침을 거역할 수는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 취할 수 있는 다급한 행동은 무조건 북측의 6자회담 복귀를 부르짖는 일밖에 없다. 핵문제에 관해 일괄타결을 하려면 양자회담에서 하지 말고 6자회담에서 해야 한다는 그랜드 바겐 추진제안을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부와 사전협의도 하지 않고 불쑥 독단적으로 꺼내놓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러나 다급한 김에 그랜드 바겐을 소리 높이 외친 이명박 대통령의 목소리는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는 공허한 울림이 되어 맨해튼의 하늘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국무부 관리들이 기자들에게 던진 몇 마디 말로 그랜드 바겐을 묵살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뉴욕타임스> 2009년 9월 21일자 기사는, “북측의 핵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려는 것은 무리수로 보인다”고 지적한 오마바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발언을 비판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특사파견을 반대하고 싶어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궁지에 빠진 나머지, 앞뒤를 가려보지 못하고 그랜드 바겐 제안을 불쑥 꺼냈다가 망신만 당하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망신당한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 차츰 잊혀지겠지만, 만일 위기관리 능력도 통하지 않을 불가항력적인 철군협정이 체결된다면 이명박 정권은 어찌될까



 
 
 
 
E-mail : onecorea21@hotmail.com | TEL. 02) 6406-6150
Copyleft (c) 1999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