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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08년 06월 10일        조회 : 25851        작성자 : 관리자     

자료제공: 통일뉴스 www.tongilnews.com

 

 

 

김상일(한신대 전 교수, Korea Project Director, 美 Claremont Process Center) 

 

2MB의 ‘별수’ 없는 ‘꼼수’

자고로 전쟁 마당에서나 상술에서나 심지어 바둑판에서 마저 상대방을 이기려면 상대방 보다 한 수 數 높아야 한다. 그런데 한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협상술에서 MB 정부는 별수 없는 꼼수만 내 보이고 있어서 우리를 실망시키고 나아가 불안케 하고 있다. 계속 거짓말만 하다가 국민들의 촛불 앞에 무릎을 꿇고 내놓는 수란 업자들 간의 ‘자율 규제’에 기대하자는 것이 고작이다.

6월 7일에는 부시한테 전화까지 해 “월령 30개월 소고기가 수입되지 않도록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이 정도면 2MB의 수량 數量은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일개 국가가 미국의 장사꾼들의 자율에 의지해 국민들의 건강권을 내던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있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의 용량이다. 문서로 작성해 두어도 불리하면 사문화시키는 것이 미국인데 전화 통화 하나로 부시의 말을 믿어 달라고. 사대주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실로 대한민국호는 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 왜 하필이면 기독교 장로 대통령 때마다 이런 위기가 오는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쇠고기 재협상 논란과 관련, "지금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쇠고기) 재협상 얘기를 해서 경제에 충격이 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말 가슴이 답답하다. 도대체 더 큰 충격이란 무엇인가? 국민의 건강권 이상 더 큰 충격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수도의 한 복판 차나 다녀할 길에 젊은 학생들이 밤과 낮을 구별하지 않고 도로를 메우고 있는데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수밖에 나오지 않는데 실로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두고 ‘불가항력’이라고 했다. 불가항력이 올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의 입에서 지금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않는가? 불가항력적 상황에서도 이순신은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번 일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명명백백한 대통령 개인의 잘못 때문이다.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그가 취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지 않는가?

그래도 우리는 지도자와 국민들이 지혜와 용기로 이 위기를 슬기롭게 탈출해 나가야 한다. 거기에는 한 가지 귀감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귀감을 오늘 1937년 초 여름에 있었던 항일유격대의 소탕하 전투에서 있었던 일행천리의 전술 전략에서 찾아보려 이 글을 쓴다.

동격서성 東擊西聲과 서격동성 西擊東聲 유격전술

지금 일방적 힘을 구사하고 있는 미국이 오직 한 나라 북한(조선) 앞에서는 백기를 늘 들고 말았다. 리비아의 가다피도 굴하고 말았다. 그러나 도대체 북.미간에 무슨 징크스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생겨나는 것일까? 나는 그 비결을 김일성 항일유격대의 전술과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고록은 김일성 유격대가 일본과 벌인 크고 작은 전투로 점철돼 있다.

김일성과 같은 나이의 중국 유격대장들은 거의 죽었다. 양정우, 위증민, 주보중, 진한장 등이 잡혀 죽고 병사했지만 김일성은 16년간을 살아남았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그의 뛰어난 전략 전술에 있었다고 사려된다. 그리고 해방 이후 북이 대외적으로 특히 대미 협상에서 항상 우위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도 김 사령의 유격전술 전략의 연장에서 매사에 임하기 때문이라고 판단되어 여기에 한 사례를 소개한다. 실로 한 나라 지도자의 지략과 지혜 그리고 용기와 결단은 그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의 행불행과 운명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항일 유격대의 전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적을 교란시키는 것이다. 매복전, 유인전, 기습전,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구사하여 적을 우선 피동으로 몰아 넣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라고 한다. 동에서 소리를 내면서 서에서 치고, 서에서 소리 내면서 동에서 치는 전술 말이다. 이를 동격서성 東擊西聲과 서격동성 西擊東聲이라 한다.

일제도 김일성 유격대의 이런 전술에 맞서서 오가작통 五家作統, 십가연좌법, 갑보제도 수법을 사용하였다. 이는 일제가 김일성 유격대와 인민들을 격리시키기 위하여 사용한 수법으로 5가정 단위로 조직을 만들어 서로 감시하도록 하고 만약에 어느 한 가정이라도 유격대원을 숨겨주면 10가정을 연좌법으로 처형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견벽청야 堅壁淸野는 토성을 쌓고 들에는 집하나 없이 깨끗이 불태워 버리는 것이다. 이 수법은 지난 전쟁 중 공비토벌이라 하여 산간벽지의 집들을 소개시키고 불태워버린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맞서 김일성유격대는 위정화령 爲整化零, 그리고 이령화정 以零化整의 전술을 구사한다. 있는 것 같은 데 사라지고 없는 것 같은 데 갑자기 나타난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출귀몰이라고 한 것이다. 백전백패한 일본은 김일성 이름만 들어도 혼줄이 나 도망 치고 그의 목에 건 현상금은 중국 양정우 장군에 건 현상금과 같았다. 이는 김구를 능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신출귀몰하는 전술과 전략으로 그도 살아남았고 동지들도 살아남아 해방과 함께 그들은 함께 조국에 들어 왔다. 이렇게 세운 정부와 외세에 의존한 사대주의 근성이 바탕이 된 정부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우선 외교 전략과 협상술에서 그 차이는 심대하다. 협상하는 대상국을 사대하고 무슨 협상이 제대로 되겠는가. 차라리 그것은 협상이 아니고 조공이지.

일행천리 이신작칙

1936년 6월 국내 진공을 앞두고 김 사령은 그 반대 방향인 무송현 쪽으로 진공을 명령한다. 이 전략을 두고 위정화령 이령화정이라고 한다. 대원들은 모두 왜 느닷없이 북행길이냐고 의아해 한다. 그러나 만약에 남행길을 앞두고 남으로 바로 내려가면 그 곳으로 적의 병력이 몰릴 것은 명확하지 않는가? 결국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남행길을 위한 북행 전략을 세운 것이다. 김 사령의 이런 전략은 적중하여 장백지역에 결집돼 있던 적의 병력은 사방으로 분산되었고 초점을 잃고 말았으며, 이 일대에 있던 지하 조직들은 조직망을 단단히 다져 후일 유격대가 왔을 때에 큰 힘이 되었다. 이런 전술 전략을 두고 위정화령이라고 한다.

1937년 춘삼월 만주에도 봄이 들어 버들이 싹을 틀 무렵. 이름도 양목정자, 버들이 많은 고장이라 하여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만강 부근의 양목정자에는 동서로 나뉘어 두 개의 밀영이 있었다. 김일성 유격활동 가운데 이곳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이곳에서 가장 사랑하던 동지들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리동백, 리달경, 김산호 동지를 모두 이곳에서 잃어 버렸다. 오른팔 왼팔 하던 동지들이 모두 이곳에서 산화하였다.

일명 소탕하 전투라 하는 전투가 바로 이 양목정 밀영 부근에서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적들이 포위하여 하늘에 나는 새가 아니고야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을 정도였다. 적들이 들고 있는 우등불 불빛이 가히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이 마당에 나올 수 있는 전술이란 누구나 한 번 싸우다 죽는 ‘결사항전 決死抗戰’ 뿐이었다. 이것은 일종의 자포자기에 가까운 것으로서, 유격활동의 역사를 여기서 막내리고 마는 절박한 순간이었다. 적은 대략 3,000여명 유격대원은 고작 수백명에 지나지 않았다.

7연대장 손장상이 주장한 전략이 결사항전이었다. 그러나 김 사령의 입에서는 “동지들 살아남는 것은 죽기 보다 더 힘든 일이다. 우리는 죽을 것이 아니라 모두 살아서 조국에 돌아 가야한다”(6권-28쪽)고 상상 밖의 제안을 한다. 많은 동지들이 자루 안에 든 쥐와 같은 데 마지막 죽기 전에 결사항전이나 하고 죽자고 하는 마당에 사령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이 순간 그는 기발한 하나의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김일성 사령관의 머리 속에서 구상하고 있었던 전술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일행천리 一行千里’ 한 마디였다. 전광석화 같이 아니, 영감 같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이 말 한마디는 김일성 유격대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그것도 큰길을 통해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말 그대로 일행천리로 내닫게 하였다.

큰길을 택한 정공법은 이렇게 성공했다

“나는 크고 작은 우등불로 가득 차있는 골안을 굽어보면서 포위망을 뚫고나갈 묘책을 궁리하였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어떻게 뚫고나가 적의 포위를 멀리 벗어나겠는가 하는 것이였다. 만일 소탕하 골 안에 널려있는 토벌대의 병력이 수천명으로 추산된다면 적의 후방은 지금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적들은 우리가 포위 환을 벗어나는 경우 분명 더 깊은 산속을 빠지려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적의 포위가 비교적 약한 ‘큰길’ 쪽에 붙어서 살짝 빠져 나가는 것이 상책이다. 그 다음에는 큰 길을 따라 일행천리하자, 이러한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6-28)

여기서 김 사령은 적이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할 것인가를 먼저 추리한다. 즉, 적들은 유격대가 깊은 산 속을 빠져 나가리라 생각할 것이라고 적의 머릿속에 먼저 들어간다. 유격대가 대로행 한다는 것은 유격대 전술의 기본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김 사령은 적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니 그 반대의 선택, 다시 말해서 큰길로 대로행 한다는 것이다. 적의 머릿속에 들어가 한 번 생각하고 다시 내가 생각하고 다시 그것을 적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바로 이렇게 하는 과정에서 수가 높아져 가는 것이다.

“지휘관들은 ‘큰길’ 이라는 말에 일제히 고개를 쳐들었다. 이동할 때 은밀성을 보장하는 것은 유격대의 활동에서 철칙으로 되여 있었다. 그런데 적들의 대병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때에 주민지대에 나가 대 도로를 따라 행군하라고 하니 그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손장상이 내 곁에 다가와 지나친 모험이 아닌가고 불안스럽게 말했다. 그가 나의 탈출작전을 지나친 모험이라고 우려한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모로 보든지 그것은 모험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아슬아슬한 작전이였다. 왜냐하면 적들이 큰길을 지키고 있을 수도 있고 또 저들의 후방에 일정한 병력을 남겨 놓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였다”(6-30)

소탕하의 장대우에서 결심한 주민지대로의 탈출과 대로 행군 전술은 승산이 확실한 모험이었다. 김 사령이 승산이 확실하다고 본 것은 바로 그 모험 속에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고 피동에서 주동으로 넘어가려는 투철한 공격정신이 깃들어있고 적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기 위한 과학적인 타산이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싸움이란 결국 지혜와 지혜의 대결인 동시에 신념과 신념의 대결, 의지와 의지의 대결, 용기와 용기의 대결이기도 하다.

“적들은 소탕하 수십리 골 안에 우등불의 바다를 펼쳐놓음으로써 자기들의 역량이 얼마만큼 된다는 것과 어떤 전술로 유격대를 섬멸하려 한다는 것을 죄다 노출시켰다. 그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작전문건을 탈취당한 것과 같은 실수를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실수로 하여 그들은 벌써 우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셈이였다.”(6-31)

다시 말해서 김 사령은 적들이 지금 여기 다 모여 있고 큰 길을 지키고 있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적중했다. 적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다 노출시키고 있었고 이 노출된 모습을 김 사령은 본 것이다.

“먼저 8련대가 골짜기로 내려갔다. 그 뒤를 경위중대가 따르고 7련대가 따랐다. 행군종대는 불무지들을 피해가며 큰길 쪽으로 소리 없이 움직였다. 집단의 생사를 판가리하는 복잡한 정황이나 위기가 조성되였을 때 지휘관이 취하는 자세와 개개의 언행이 전대오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그때 나는 크게 절감하였다. 지휘관이 태연하면 전사들도 태연하고 지휘관이 당황해하면 전사들도 당황해하는 법이다.”

“예견했던 바대로 신작로에는 개미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불무지 자리만 남아 있을 뿐이였다. 우리는 궤도우를 질주하는 급행열차처럼 여러 개의 마을들을 거침없이 통과하면서 동강으로 행군하였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텅 빈 적구를 무사히 통과하였다. 소탕하에서 실현한 대로행군전술을 후날 조국에 나와서 베개봉을 떠나 무산지구로 진출할 때에도 적용하였다. 그 전술을 일행천리전술이라고 한다.”

적들은 ‘김일성 부대가 여기서 끝이다’하고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신문사 기자들을 이 전투에 다 불러 놓고 김일성 죽은 시체를 구경시키려고까지 했었다. 이러한 내용은 ‘철심’이란 잡지에 자세히 실려 있다. 일본, 만주국, 독일 등 3국의 기자들로 구성된 기자단까지 끌고 왔다고 한다. 김일성이 과연 인간인지 신인지 보여 주려고 작심을 하고 지금으로 말하면 언론 플레이를 하려 했던 것이다. 철심에 실린 ‘동변동토비행’ 이라는 기사에 의하면 그 때 모인 기자단은 일본의 주요 신문들인 도꾜니찌니찌신붕, 요미우리신붕, 호찌신붕의 기자진과 함께 신경방송국 국원들과 만주국의 외교부 관리들, 나치스독일의 국가통신사 통신원인 요한 네벨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일, 독, 만 출판보도계와 언론계의 연합진에 외교관들까지 합세한 어마어마한 참관단이었다. 아마도 적들은 무송지구 토벌작전을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범작전으로 판단하고 이 작전에서 달성하게 될 저들의 혁혁한 전과를 만천하에 널리 소개하고 싶은 열의로 퍽 들떠 있었다.”

1937년 이후 김일성 사망설은 만 50년 후 1987년에 다시 등장한다. 아무튼 일제는 ‘김일성은 자루 안에 든 쥐’라고 보도 자료를 미리 배포하여 아마 어떤 언론들은 잡히지도 않은 김일성을 잡았다고 보도한 것 같았다. 이래서 첫 번째 김일성 사망설이 온 누리에 퍼지게 되었지만 김일성은 살아 일행천리 신출귀몰로 번개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진짜 김일성은 1937년 죽었다는 헛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 뉴라이트가 만든 교과서마저 이 헛소문을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갈량을 찜쪄먹을 도사라야 미국에 이긴다

항일 유격대가 수천명에 달하는 대병력의 포위를 성과적으로 돌파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통보를 받은 적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적들은 혁명군의 행방을 가늠하지 못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적 사병들 속에서는 여러 가지 괴담들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의 전술은 귀신도 곡할 전술이다”, “조선 유격대에는 제갈량을 찜쪄 먹을 도사가 있다” 이런 말들이 민간에까지 흘러나와 농촌 마실방에 모여드는 늙은이들의 화제거리로도 되었다. “이 행군을 통하여 우리 부대에 대한 전설은 더욱 풍부해졌다.”(6-34)

제갈량이 얼마나 수가 높은 전략가인지는 삼국지에 잘 기록돼 있다. 여기 제갈량과 조조 사이의 두뇌 싸움의 경우를 한 번 예로 들어 김일성 유격대장의 전술과 얼마나 같은지를 알아보자. 삼국지에 보면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지나 갈 것인가 안 지나 갈 것인가를 놓고 관우와 제갈량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보자. 제갈에게 관우가 “화용도로 조조가 반드시 오느냐” 묻자

제갈: “반드시 온다”
관우: “화용도의 한 켠엔 산길이 또 한 켠엔 평지가 있다. 오면 어느 쪽으로 오느냐”
제갈: “내가 말할 대로 조조가 오지 않으면 목숨을 내 놓겠다”
관우: “두 갈래 중 어느 쪽으로 오느냐”
제갈: “산길로 온다. 조조가 오게 하자면 산길 쪽에서 연기를 올리라. 그러면 조조가 틀림없이 산길 쪽으로 온다”
관우: “될 말이냐? 연기를 올리면 조조는 군대가 있는 줄 알고 평지로 갈 것이 아니냐?”
제갈: “그것이 병법의 허허실실이란 것이다”

제갈량의 허허실실이란 상대방의 아는 것을 아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그러니 적이 연기 있는 쪽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아주 초보적인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연기가 있다는 것은 군대가 ‘없다’를 위장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연기가 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제갈량을 그 다음 단계의 높은 사고를 하여 그러니깐 조조의 이런 사고를 하는 것을 이용하여 사로잡는다는 것이다. 조조는 메타적 사고를 했지만 제갈량은 메타의 메타적 사고를 한 것이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있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 양자 가운데 상대방이 후자를 생각하도록 만들어 연기도 있게 하고 군대도 있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허의 허는 실이 되는 전법인 것이다.

제갈량이 이렇게 전략을 세운 것은 조조의 사고 구조를 훤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뇌가 단순한 사람의 경우 즉 일차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경우는 연기가 있는 곳에 군대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그 수준에 맞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일제가 우리를 지배할 때에 사용한 만주사변이나 중일전쟁은 모두 이 정도 차원으로도 우릴 속일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대중들과 지도자들은 일본의 이 정도 속임수에도 모두 속아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조조의 머리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연기가 있으니 군대가 없다고까지 사고 한 것이다. 이는 상대방이 자기를 속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이다. 우리가 이 정도의 사고만 했어도 일제에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갈량은 조조의 사고 구조를 다시 파악하여 연기를 피우고 군대도 머물게 한 것이다. 제갈량은 산에 불을 피우면 조조가 이렇게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산지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을 피우고 사람이 있는 것처럼 위장한다. 그것에 속아 평지를 택하면 적은 습격을 할 것이 뻔하다” 조조가 여기까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제갈은 “그러므로 불을 피워 사람이 있는 것같이 보이면 도리어 그 켠으로 온다는 것이다” 관우가 “당신 말이 틀림이 없느냐”고 하니 제갈은 “틀림없다. 틀리면 내 목을 베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조조가 제갈의 이런 사고 구조를 ‘아는’ 경우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산으로 오지를 않고 평지로 가고 말 것이고 제갈의 목은 달아나고 말았을 것이다. 이 두뇌 싸움에서 제갈이 이겼다. 이와 같이 무기들의 전쟁 보다 더 무섭고 중요한 것은 의식의 전쟁이다. 김일성 유격 부대나 이순신의 해군이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은 모두 의식의 전쟁에 있어서 한 수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은 이런 높은 의식의 수준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도 아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 속에서 나온다고 했다. 인민들 보다 현명하고 똑똑한 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기본 인간관이고 철학이었다. 이 점에서 이순신도 마찬가지이다. 이 두 사람은 철두철미 대중 속에 군중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거기서 지혜를 구했던 것이다.

일행천리 전술과 탈현대의 논리

인간은 의식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진화해 왔다. ‘탈현대’란 현대 보다 한 수가 높은 의식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원시-봉건-근대-현대-탈현대로의 발전은 그대로 의식 수준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탈현대 철학자들이 그들의 논리가 현대와는 다름을 말 할 때에 약방의 감초 같이 사용하는 예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애드가 알렌 포우의 유명한 소설 ‘잃어버린 편지’(일명 ‘도둑맞은 편지’)이다. 이 편지가 범죄의 단서이기 때문에 수백 명의 경찰을 동원하여 범인의 집에서 이 편지를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머리 좋은 범인은 그 편지를 거실 책상 위 눈에 잘 띄는 다른 편지나 서류 속에 그냥 내버려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범죄자의 이런 수법마저 눈치채고 잃어버린 편지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수사관과 범죄자 사이의 머리싸움에서 수사관이 찾기 어려운 곳에 편지를 숨긴다. 그러나 수사관이 이 사실을 안다. 여기까지가 모던 modern의 논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이 안다는 그 사실을 알고 눈에 잘 띄는 아무 곳에 편지를 둔다. 그런데 수사관은 범인이 안다는 그것을 알고 있다. 이는 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다시 아는 구조이다. 이 3중 구조가 바로 탈현대의 논리이다. 그러면 범인은 수사관의 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다시 알고 그리고 다시 그 안다는 것을 아는 4중 구조를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수사관은 5중 구조를 가져야 하고.

항일유격대의 일행천리 전략으로 재협상하라

먼저 미국은 4월 18일 협상에서 자기들이 양보하려고 한 것까지 한국 대통령이 양보하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고 나오고 있다. 이 마당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인가? 그것은 큰길로 대로행 일행천리하는 전술적 비법을 꺼내드는 것이다. 이 전략이 먹혀들자면 대통령과 국민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다 준비가 되 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문제이다.

먼저 미국은 우리가 소고기 재협상 하자고 하면 FTA 비준 거부라는 카드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 다음 카드는 우리의 안보 문제 들고 나올 것이다. 즉, 주한미군 철수 운운하며 겁을 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의 문제가 따른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이 미군 철군하면 해보라고 당차게 나올 용기와 결단이 있느냐가 문제이다. 우리가 이렇게 나와도 생각키로는 100% 미국은 상상 이외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주한미군은 우리의 안보가 아닌 자기들 목적과 필요에 의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 우리를 궁지에 몰고 완전 포위하고 있다고 자신만만해 할 것이다. 우리를 내 몰면 산골짜기로 밖에는 퇴로가 없다고 압박할 것이다. 마치 1937년 초 봄에 항일 유격대가 겪었던 것 같이. 그러나 여기에 대담하게 큰길로 일행 천리하는 전술을 펴 보라는 것이다. 거듭 말해 미군 철수가 미국이 던질 마지막 카드인데 이에 대해 해볼테면 해보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는 지도자의 태도가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미국의 여야는 자기들의 기득권 보다 국가의 이익이 항상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오바마의 말도 부시의 말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국내에선 싸워도 대외 정책에선 언제나 짜고 고스톱 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우익들은 국가 이익 보다 자기 집단의 기득권이 앞서는 데 체질화 돼 있다. 우리의 수뇌부와 국민이 일심단결 일행천리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도 광화문에서 민초들의 촛불은 애타게 타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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