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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09년 01월 10일        조회 : 8886        작성자 : 관리자     

여순사건, 정부군 민간인 학살... 잔인한 진실
진실화해위 "민간인 439명 국군.경찰에 의해 집단 희생"
2009년 01월 08일 (목) 12:36:19 정명진 기자 mjjung@tongilnews.com
   
▲ 여순사건 당시 반군 협력자 색출을 위해 진압군이 주민들을 학교에 집결시키고 있는 장면 사진. 출처 : <LIFE> 촬영일 : 1948.11.1. 사진기자: 칼 마이던스 [사진제공-진실화해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는 8일 "1948년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해 민간인 439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사실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이어 "순천지역 희생자는 439명으로 확인됐으나,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거나 사건 이후 멸족된 사례 등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 수는 2천여명을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여순사건은 육군본부가 여수 제14연대에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하달하자 1948년 10월 19일 이에 반대하는 소속 군인 2천여명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진실화해위 조사결과, 이들 반군이 지리산.백운산 등지로 들어가 이른바 '구빨치(야산 유격대)' 활동을 벌이자, 이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정부군은 반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집단 살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순천지역을 비롯한 전남 동부지역의 민간인들은 반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국군 제2.3.4(20).12.15연대 소속 군인과 순천경찰서 경찰에 의해 집단 살해됐다.

국군.경찰들의 민간인 살해 방식도 잔인했다. 여순사건 진압 이후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작전 과정에서 민간인의 귀, 손가락, 목을 잘라 허위로 전과를 보고하거나, 민간인을 처형할 때 그들의 친인척으로 하여금 살해하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고 진실화해위는 전했다.

군.경은 반군이나 빨치산으로 위장하는 수법도 썼다. 예전에 밥 해준 은혜를 갚는다며 반군 협력자를 색출하고, 회의를 소집한다며 마을사람을 동원해 밥을 해달라는 협박과 회유한 다음 주민들이 밥을 해주자 이들 모두 골짜기로 끌고 가 집단 사살한 사례도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저녁 10명 내외의 산사람 행색을 한 사람들이 마을에 와 강 반장이라는 사람의 집에 들렀어요. ‘예전에 밥을 해줘 고마워 은혜를 갚겠다’고 하며 밥을 해준 사람들의 집을 알려달라고 한 거지. 강 반장은 몇 사람의 집을 알려주었고 …." -세동마을 박모씨

승주읍 유흥리의 정모씨는 반군을 수색하던 경찰에게 겁탈 당할뻔 하다가 이를 가로막던 어머니가 사살되는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제가 열여섯살이었는데… 우리 집에는 어머니와 저만 있었는데 순경 한 명이 집에 들어왔어요. 어머니가 저만 남겨두고는 못 나가겠다고 마당에서 버텼어요. 그러니까 그 순경이 어머니를 총으로 쐈어요. … 100일도 안된 막내동생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죽고 나서 젖을 못 먹어 그해 음력 11월에 죽었어요…” - 유흥리 정모씨.

이승만 "남녀아동 불문 불순분자 다 제거하라"
진실화해위 "최종적 책임은 대통령과 국가에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같은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의 원인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여순사건 발생 나흘 만에 발표한 경고문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이 경고문에서 "남여아동이라도 일일이 조사해서 불순분자는 다 제거하여, 반역적 사상이 만연하지 못하게 하라"고 발표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같은 대통령의 경고문이 진압작전 지휘관으로 하여금 민간인을 상대로 무리한 진압작전을 펼치게 하는 결과를 낳았고, 이는 반군이 진압된 이후에도 반란 동조자 색출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여순사건과 관련한 순천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이 현지 토벌작전 지휘관의 명령 아래 발생했지만, 최종적인 감독 책임은 국방부, 그리고 대통령과 국가에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또 "계엄령 아래 군.경의 민간인 살해 방편이었던 '즉결처분권'에 대해서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을 대상으로 집행했고, 일반적인 군율조차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학살'"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춘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한국사회 반공체제 형성의 계기가 된 여순사건에 대해 "대한민국 60년은 여순사건을 기점으로 형성된 여순체제 60년이었다"면서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바로 알려면 반드시 여순사건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유족에 대한 사과와 위령사업의 지원,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등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조사는 '보안기록조회회보서', '사실조사서' 등 관련 정부기록 등의 자료조사를 통해 여순사건 관련 희생자를 확인했으며, 사건의 생존자, 목격자 등을 비롯해 진압에 동원된 당시 국군, 사병, 경찰에 대한 진술 등을 토대로 진행됐다.

당시 서면지서 학구출장소 소장 구모씨는 민간인에 대한 집단 사살행위가 "치안확보를 위해 불가피했던 일"이라면서도 "군.경이 혐의가 있는 민간인을 기소하지 않고 즉결처분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였다"고 자신의 행위를 대부분 시인했다.

한편 진실화해위원회는 여수를 비롯한 여타 지역의 여순사건 조사결과를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

작성일자 : 2009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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