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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08년 03월 20일
조회 : 9417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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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도 동쪽 지역을 전소(全燒)하라' |
진실화해위, '미군 폭격으로 민간인 100여명 희생' 밝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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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제323해병전투비행대대의 1950년 9월 10일 월미도 항공공격보고서. [자료제공-진실화해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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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미도 동쪽 지역을 네이팜탄으로 집중 폭격하여, 모든 시설을 불태울 것.'
1950년 9월 10일 월미도 공격에 나섰던 미 해병 제1해병비행단 소속 제323해병전투비행대대의 '임무'다.
'월미도 미군 폭격사건'을 조사해온 '진실.화해를통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 안병욱)'이 19일 공개한 323대대의 공중공격보고서에 따르면, 이 부대는 6,000피트(1,800m) 상공에서 35도 각도로 하강해 수평저공비행으로 약 500피트(150m) 상공에서 월미도 동쪽 지역에 네이팜탄 2기씩 총 12기를 투하했다.
첫 투하된 네이팜탄이 3,000도의 화염으로 지상의 숲과 건물 등을 태워버리자 연기가 너무 자욱하여 수분 선회 후 다음 폭격을 해야 했다. 차례로 네이팜탄 11개가 더 투하됐으며, 둑길에 닿는 지점 남쪽지역에 폭격이 제대로 수행됐다는 폭격결과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같은 날 출격했던 제 214대대의 임무도 '월미도 동쪽 지역을 전소하는 것'이었다. MAG-33, VMF-214, VMF-323 등 미 해병기들은 북쪽으로부터 날아와 한번 둘러본 후, 각 비행기마다 2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로켓포를 발사하고 기총소사까지 했다. 모두 광범위한 화염을 보고했으며, 한 건물에서 휘발유가 불타오르고 건물들과 숲을 태워버렸다고 공중공격보고서는 기록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들 문서 외에 국방부 공간사(公刊史), 미군 공간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월미도 폭격은 1950년 9월 10일 리차드 루블(Richard W. Ruble) 제독이 지휘한 제15항모전단에서 이륙한 함재기 등에 의해 오전 7시부터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고 봤다. 투하된 네이팜탄은 95개(tank)이며, 이로 인해 섬 동쪽지역의 건물, 숲 등과 함께 민간인 거주지가 완전히 파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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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이전 월미도 항공사진(1950.08.16). [자료제공-진실화해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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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격 이후 월미도 항공사진 (1950.09.15).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된 날이다. [자료제공-진실화해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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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월미도는 인천의 관문으로서 유엔군이 사전에 반드시 점령해야 할 전략적 위치에 있었던 까닭에 폭격의 주요 목표물은 "인민군의 방어시설을 숨겨주는 은폐물"이었으며, "이에 따라 미군은 민간인 거주지를 포함해서 집중 폭격했다"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미군기의 월미도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은 100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조사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정용구씨 등 10명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민간인 희생이 큰 이유와 관련, 진실화해위는 미군측이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집중폭격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고도에서 주민들에게 기총소사까지 한 것은 명백히 국제인도법, 전쟁법의 민간인 면제규범에 의한 민간인 구별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 작전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1949년 주한미군이 일본으로 철수하기 이전까지 인천항 및 월미도에 근무했던 미군들이 인천상륙작전에 동원됐으며 이들의 월미도 지역에 대한 정보와 항공사진 분석을 통해 민간인 거주 여부 등 월미도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인지했을 것"이라며 당시 미군이 촬영한 항공사진을 증빙자료로 제시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또한 "유족과 거주민은 전쟁이후 월미도가 군사기지로 사용되면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있는 상태"라며, "한국정부가 미국정부와 협의해 희생자와 쫓겨난 피해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진실화해위는 이날 1979년 YH노조의 신민당사 농성을 진압하던 과정에서 노조원 김경숙씨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김경숙 씨의 사망은 자살이 아니다"라며, '투신자살'이라는 당시 경찰의 발표를 바로잡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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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08년 03월 2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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