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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 : 2008년 12월 03일        조회 : 11517        작성자 : 관리자     

“매년 2천억씩, 딱 1조 7천억만 모으자!”

[월간 말 11월호] 사회 - 방위비분담금

글 서정환 기자 sjh@mal.co.kr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 지자체가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다시 까는 이유를 알고 있다. 또 옳은 일은 아니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다고 본다. 예산이 남으면 예산 집행률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을 수 없고 내년 예산이 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심의되고 통과되는 모든 예산이 사업 계획에 따라 책정되고 사후 심사를 받는다. 사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여 예산이 남았다고 해당 기관의 돈으로 남는 일은 없다.

그러나 이처럼 엄격한 국가예산에서 단 한 가지 남겨 먹을 수 있는 돈이 있는데 바로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이다.

지난 2007년 3월 <신동아>는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 중 군사건설비를 남겨서 8천억 원을 은행에 예치해놓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버웰 벨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 주한미군 예산의 한국 분담률에 관해 여러 차례에 걸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지만 사실은 2002년부터 꾸준히 돈을 남겨 왔다는 점에서, 또 금융권에 그 정도의 돈을 예치해두었다면 무려 1천억 원대의 이자 수익을 냈을 것이라는 점에서 미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방위비분담금은 이미 미군에 지급된 돈이므로 사실상 미국의 예산”이라며 그해 초까지 진행된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국방부와 외교부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군 자료 사진


2006년 방위비분담금 축적분 8천억, 지금은

더 납득하기 힘든 문제는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은 방위비분담금을 쓰고 나서 한국 정부에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는다. 다만 집행내역을 한국 국방부에 통보하기는 하는데, 국방부는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관한 자료는 미국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할 수 있다”며 시민단체나 언론의 요청은 물론이고 국회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 중에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가운데 일부 구체적인 집행내역이 처음 알려지게 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국방부 국제정책관실이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는 2007년에도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 중 군사건설비에서 약 2천억 원 이상을 남겼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자료에 포함된 2007년 방위비분담금 중 군사건설비 집행 계획에는 방공포 여단 사령부에 327억 원을 비롯하여 소방서와 식당 등 모두 합쳐 고작 437억 원이 잡혀 있었다.

그에 비해 같은 해 지급된 군사건설비는 2,976억 원. 계획된 군사건설사업을 모두 시행했다 하더라도 2,500억 이상이 남는 것이다. 기타 인건비나 군수지원비 등은 한국 정부가 지급한 금액을 모두 집행할 계획이었다.

방위비분담금 축적이 알려지고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1년 반이 지났으나 주한미군은 여전히 돈을 남겨 먹고 있으며 국방부도 뒷짐을 풀지 않는다. 나아가 국방부는 현재 막바지 협상이 진행 중인 제8차 방위비분담금 협정에서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을 축적하는 이유는 경기 북부지역에 있는 미2사단 병력을 평택으로 이전하는 데 쓰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업에 관한 한미 간 협정인 ‘연합토지관리규정(LPP)’에는 ‘미2사단 이전 사업은 미국의 부담으로 한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또 지난 7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국회 비준을 받을 때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LPP와 방위비분담금 협정은 별개의 것이니까 방위비분담금이 미2사단 이전에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부대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와 국방부 관계자들도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때문에 지금까지 주한미군이 방위비분담금을 축적해서 미2사단 이전 비용에 전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정부 당국자들로서는 쉬쉬하고 덮어둬야 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제8차 협상 타결을 앞둔 시기에 18대 국회 국정감사가 겹치면서 국방부와 외교부 관계자들은 그동안 부정하거나 모른 채 하던 태도를 바꿔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정희 의원은 지난 9월 26일 국회 예결위 국정감사에서 김종천 국방부 차관에게 “2007년 2월 방위비분담금협정을 국회가 통과시켜주면서 기지 이전 비용으로 전용을 금지한 국회 부대의견을 어긴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이 때 김 차관은 “LPP는 (미군의) 부담만 정하고 있을 뿐이고, 조달방법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출석한 권종락 외교통상부 제1차관도 “방위비분담금의 기지 이전 전용을 ‘점진적’으로 안 하는 방향으로 해결해가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미군 자료 사진


방위비분담금과 미2사단 이전 비용의 불륜

급기야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10월 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국이 방위비분담금을 LPP에 사용했다고 해서 그것을 위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외교안보부처 관계자들과 심도 있게 논의해서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정희 의원은 9월 26일 국감장에서 김종천 국방부 차관에게 “방위비분담금을 기지 이전에 사용하게 해 달라는 것이 미국의 강력한 요구 사안이냐”고 물었고 이에 김 차관은 “중요한 요구 중의 하나”라고 답했다.

사실 미국의 요구가 아니라면 국방부나 외교부로서는 이 문제를 전면에 드러낼 이유는 없었다. 방위비분담금에 관한 국방부의 입장은 애초부터 “미국에게 지급한 것이므로 미국 예산”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모른다’고 하면 됐다. 그러나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2000년부터 한국과 미국은 군사건설자금이 LPP에 사용되는 것을 상호 양해해왔다”며 “축적 분은 군사건설자금의 미국 집행자금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한미가 상호 양해했다’는 부분은 국회에도 알린 바 없으니 이제 와서 이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은 긁어 부스럼 만들기였다. 방위비분담금과 주한미군 기지 이전의 관계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던 17대 국회에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을 지낸 최재천 전 의원은 “당시 방위비분담금을 미2사단 기지 이전에 쓴다는 한미 간의 이면합의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고 국방부나 외교부 관계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어 “방위비분담금의 기지 이전 사용에 관한 미군 당국자들의 생각은 ‘한국 관료들이 합의는 다 해놓고 왜 국민들과 국회를 설득하지 못해서 욕은 미국이 다 먹게 한다’는 것”이라며 “이것만큼은 미국이 한국 관료들을 불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 당시의 비판만 모면하려던 외교안보 관계자들의 근시안적 정책이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것.

주한미군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도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미국은 한국 내 반미여론 동향에 매우 민감해졌다”며 “때문에 방위비분담금 전용 문제도 미국이 이번만큼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은 시종일관 미2사단 기지 이전 사업을 방위비분담금으로 충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리언 라포트,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부터 월터 샤프 현 사령관들은 약 5년 동안 미 의회 증언 자리가 있을 때마다 “용산기지 이전비용은 한국 정부가 직접 부담할 것이며, 2사단 기지이전은 미 의회의 세출예산과 한국의 방위비분담 비용에서 충당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2006년 4월 24일 버웰 벨 전 사령관은 의회 증언에서 “방위비분담금을 기지 이전에 사용하도록 한국과 합의했다”고 못박았다. 2006년 3월에는 윌리엄 팰런 미 태평양사령관이 미 하원에서 구체적으로 ‘한국이 미2사단 이전비용으로 방위비분담금 16억 8,000만 달러(약 1조 7천 억 원)를 부담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한국 외교안보 당국이 이랬다 저랬다 말을 바꾼 것은 확실히 부스럼을 키운 꼴이 됐다. 이제는 국회에서 보수정당 소속 국회의원들도 주한미군과 방위비분담금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놓고 한국 국방부를 가장 강도 높게 성토한 것은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였다. 국회 국방위원회인 소속 서 대표는 10월 8일 열린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주한미군이 받아서 쓰지 않고 남겨둔 방위비분담금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며 “미국이 우리에게 사술을 쓴 것”이라고 호통을 쳤다.

서 의원은 “예산은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쓰지 않은 불용액은 다시 환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국가재정법 제45조와 국회의 심의권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며 별도의 보고와 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서 의원의 비판은 “미군이 사기 쳤다고 볼 만한 것이라서 이런 문제로 반미단체들이 데모를 하면 도대체 뭐라고 할 것이냐”는 것이었다.

미군 자료 사진


외교안보 당국자들, 긁어 부스럼만 내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LPP는 비용 분담을 규정한 것이고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은 자금 조달에 관한 것”이라며 “방위비분담금이 미군의 기지 이전 사업에 쓰이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으나 “한심하다” “못 믿겠다”는 타박만 들었다.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도 “이미 축적한 방위비분담금은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다 같이 묵인한 것이라 다시 돌려받는 일이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겠다”며 “그러나 미국이 매년 얼마씩 축적해서 지금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밝히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유 의원은 특히 “축적된 돈이 한국 내 미군 주둔비용으로 쓰이는 것을 넘어 본토 미국 국방부 예산이나 다른 나라에서 전용한 의혹도 있다”며 “방위비분담금 집행 내역이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인 임태희 의원도 “방위비분담금 중 현금 지원이 77.6%로 높고 분담비율도 한국과 미국 주장이 서로 달라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하고 불신도 있다”며 “100% 현물 지원인 독일의 경우도 참고하고 간접비 계산도 명확히 해서 문제를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예산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방위비분담금에 관한 보수 정당 의원들의 지적은 지난 7차 협상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작년 2월 22일 개최된 통일외교통상위원회 회의에서 다름 아닌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이 방위비분담금 예산 집행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7차 방위비분담금협정 비준동의안이 제출된 것은 2006년 12월 29일이었는데 이 예산은 이미 11월에 정부가 국회에 요청했고 그에 따라 12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며 “국회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 없는 예산을 심의 확정했고, 정부는 이를 방조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김용갑 의원도 “권영길 위원의 지적이 일리가 있다”면서 “해마다 협상이 지연되니까 예산을 통과시키고 난 다음에 비준안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됐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때만 하더라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방위비분담금의 집행 절차에서 더 깊이 들어가, ‘집행내역을 공개하라’거나 ‘한국 측이 제공하는 간접비가 저평가되었다’는 등 내용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 적은 없었다.

국회에서 방위비분담금에 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는 10월 현재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제8차 방위비분담금협정 예산 약 7,600억을 또다시 국회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2007년 2월 당시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현 민주당 국회의원)은 권영길, 김용갑 의원의 지적에 관해 “협상을 하면서 미국과 밀고 당기다 보니까 우리 예산집행 절차에 맞지 않은 사태가 초래됐다”며 “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11월부터는 다시 예산 심의가 시작되고 연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설령 이번에도 ‘한미동맹’을 디딤돌 삼아 국회에서 이 예산안이 처리된다고 해도 이번 제8차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넘어야 할 국회 문턱은 지난 7차 협상 때보다 높아진 것이 분명하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방위비분담금을 비준해주지 않아도 미국은 이미 쌓아놓은 돈 가지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며 “방위비분담금협정 비준동의를 거부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일자 : 2008년 1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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