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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군과 정부 여당, 반북 언론 등이 천안함 침몰사건을 북의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군 주도의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도 함수 인양 하루 만인 25일, ‘근접 비접촉 수중폭발’이라는 잠정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내부폭발, 좌초, 피로파괴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마자 반북수구언론에서는 북한의 공격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제 물증을 찾아내라고, 자위권을 선포하라고 선동하고 있다.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믿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북한의 앞잡이’, ‘좌빨’이 되고 있다. 심지어 천안함 유족들까지 ‘빨갱이’로 매도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상식과 이성을 상실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천안함 침몰사건을 ‘꽃놀이패’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눈과 귀를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우리 국민 59.9%가 ‘민군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이미 민간 전문가들이 군 주도의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훨씬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이성과 합리의 눈으로 볼 때 북이 천안함을 공격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를 말하려고 한다.
첫째, 북이 남측 전함을 공격하여 얻을 정치적 실익이 없다.
현재 북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문제다. 북은 2010년 1월 평화협정 협상을 제안한 외무성 성명을 비롯하여 수시로 미국을 향해 한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북미대화와 6자회담,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평화포럼 개최를 두고 북미 양국을 중심으로 물밑 대화가 활발했다. 논의 진전을 위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미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북이 천안함을 공격한다면 평화협정 체결을 향한 북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국제적 고립과 새로운 제재에 직면할 것이다.
천안함 사건 직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공격했다는 간접 정황도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 북미 대화 유보를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북한의 개입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천안함 사건은 북한의 평화협정 행보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이 대외 관계에서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한반도 평화협정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실책이자, 국제적 고립과 정치적 부담을 자초하는 악수다. 이렇듯 득보다 실이 많은 일을 북한이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성적이고 합리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다.
둘째, 북은 군사적 모험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 3차 서해교전이 있었다. 일방적 피해를 당한 북은 ‘보복성전’을 다짐하면서 1월 25일부터 3월 29일까지 백령도 북쪽 해상 1곳과 백령도 오른쪽 해상 1곳에 각각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1월 27~29일 실제 수백 발의 해안포사격을 했다. 하지만 북은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포탄을 NLL 남쪽으로 쏘지 않았다. 북이 도발적이고 호전적이라는 반북세력의 인식과는 정반대의 대응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일관된 대북 강경책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이 정치적 판단을 중심으로 하여 군사적 모험주의를 경계하면서 남북관계에서 인내심을 갖고 최대한 신중하고 절제된 대응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이 3차 서해교전에 대한 북의 보복의 결과라는 주장은 ‘정치군대’라는 북한군의 성격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유치한 논리다.
셋째, 북의 잠수함(정)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주장 자체가 아주 비현실적이다.
북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주장에 따르면 북의 잠수함(정)이 한미당국의 각종 감시 장비에 전혀 포착되지 않고, 사고 해역 평균 수심 6.4m에 불과한 탁한 물길을 침투해서 항해 중인 천안함 동선을 정확히 파악하여 버블 제트와 같은 어뢰 단 일격으로 천안함을 두 동강 내고, 발각되지 않고 유유히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한미연합 독수리연습의 일환으로 인근 해역에 호위함과 초계함, 고속정이 수십 척 포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월등한 성능을 자랑하는 한미양국군의 감시 장비는 순간 까막눈이 되었는데 북한 해군은 투시력과 투명능력을 가졌다는 말인가. 이러니 누리꾼들 사이에서 천안함 침몰이 UFO의 소행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지난 22일 국회 답변에서 천안함 침몰사건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간접적인 정황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군과 정부 여당은 천안함 침몰사건을 북의 공격으로 몰아가고 있다. 군은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북풍몰이와 애국주의 조장으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선거에서 재미를 보기 위해 그러는 것 같다.
나아가 최근 정부 일각의 입장은 북한의 소행임을 100% 입증하는 물증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어뢰 공격이 확인되는 등 일정한 증거자료가 수집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에 이를 설명하고 안보리 회부 여부를 논의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북의 공격으로 규정하여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는 한반도 정세를 뒤집으려는 무모한 도전을 꿈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만약 최종적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의 소행’으로 공식 발표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를 부인하는 북은 강력히 반발할 것이고, 응징이니 제재니 하는 소동이 벌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북미관계도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군사적 충돌이 빚어질 지도 모른다.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한 전제로서 국방장관, 합참의장, 해군참모총장 등 사건 발생과 수습과정의 총체적 무능과 국민 기만, 은폐·왜곡의 책임자들을 먼저 파면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군 주도 진상조사단을 해체하고 사망자.실종자 가족, 야당, 시민사회단체, 관련 학계, 법조계 등이 추천하는 민 주도의 진상조사단 새로 꾸려야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서는 안 되듯이 조사 대상자에게 조사를 맡겨서는 제대로 된 조사결과가 나올 수 없고,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군 주도의 진상조사 결과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진상규명의 열쇠라 할 수 있는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한국해군전술자료체계(KNTDS), 교신기록, 작전상황일지, 열상감시장비(TOD), 천안함 절단 부위 등을 적절한 방식으로 모두 공개해야 한다. 군은 군사기밀이라서 이들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군사기밀이라 하더라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때” 공개할 수 있다고 군사기밀보호법(제7조 1항)에 명시되어 있다. 이 사건이야말로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사건이 아니겠는가.
이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포함된 10.4선언을 이행했다면,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요구한대로 북침 전쟁연습인 한미연합 독수리연습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 같은 비극적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근본적으로 이 사건은 분단과 정전상태에서 비롯된 문제다. 서해 해상경계선조차 설정되어 있지 않은 불안정하고 위험한 정전체제를 마감하고 조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이 같은 사태를 막는 근본적 대책이다.
끝으로 이번 사건을 철저한 군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건 발생과 수습.조사 과정에서 보여준 군의 행태는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불러왔다. 군은 역대 정권에서 매번 추진된 국방개혁을 번번이 좌절시켰다. 군은 국민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기득권과 비밀주의의 철옹성 안에서 무능과 부실의 때를 켜켜이 쌓아와 결국 이런 비극적 사태를 불러온 것이다. 이번 기회에 군에 대한 전면적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 요체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기풍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