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한 방송사의 보도를 통해 부산 하야리아 기지가 오염 치유없이 한국에 반환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에 외교통상부는 급히 해명자료를 냈고 다음날인 14일 7개 기지를 반환받았다는 브리핑을 하였다. 국방부와 환경부가 참여한 3자 브리핑에는 정치, 외교 수사만 가득했을 뿐 국민적 관심사인 환경 문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환경 치유 문제는 국민적 관심사이다.
2007년 6월 국회 청문회 당시 반환된 미군기지에서 발견된 기름이 묻은 솜뭉치가 불타는 장면,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탄식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한국법에 따라 미국이 정화할 것을 요구했던 환경부의 주장은 한미동맹을 저해하는 것으로 매도되었고, 환경분과위원회에서 다루던 미군기지 환경문제가 국방부, 외교통상부가 주무부처인 안보정책구상회의(SPI)에서 처리되었다. 결국 외교 안보 논리에 밀려 23개의 기지를 미국의 오염 치유없이 반환받았고 수천억원에 이르는 정화비용은 고스란히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이 반이 흐른 1월 하야리아를 비롯한 7개 기지가 반환되었다. 23개 기지 반환 당시와 비교하여 환경부의 주권 행사 주장은 찾아볼 수 없고, 결과도 예전보다 나아지기는커녕 한국 정부가 알아서 미국 주장대로 합의해 준 상황이다. 여기에 부산시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528천㎡에 달하는 부산시 부산진구에 위치한 미군 하야리아 이전부지 전경의 모습ⓒ 민중의소리
부속서 A와 JEAP 절차미군기지의 반환은 한미 SOFA 협정과 환경 관련 부속서들에 의해 진행된다.
2007년까지 반환된 기지들은 「환경정보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 주한미군의 반환/공여지에 대한 환경조사와 오염치유 협의를 위한 절차합의서(이하 부속서 A)」가 적용되었다. 2001년 개정된 SOFA 규정에 환경 조항이 신설되었고 2002년 1월 「환경 정보 공유 및 접근 절차」가 마련된 후 2003년 5월 부속서 A가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2003년 12월 용산 아리랑 택시부지가 반환되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 업체와 계약하여 78m³ 상당의 오염된 토양을 제거”하였으며, “오염된 토양을 제거한 후 토양 오염도는 한국 환경법에서 정화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는 기준치의 절반 가량인 약 1,000ppm으로 측정”되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를 두고 “환경오염 공동조사 및 오염원인자 정화 원칙을 구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환되는 기지의 수가 많아지자 2005년 미국은 SOFA 규정에 명시된 KISE(Known Imminent & Substantial Endangerment to human health 인간 건강에 공지의 급박하고 실질적인 오염)에 따른 오염만 치유할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시작했다. 한국측 조사 결과 확인된 오염이 모두 KISE 기준 이하라고 미국이 주장하자 환경부는 KISE의 오염물질 기준과 미국측 조사 보고서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하였다. 아직까지도 KISE가 정확히 무엇인지, 기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하야리아 기지가 폐쇄된 지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은 미국의 거부 때문이었다. 2006년 하야리아 기지는 오염정도가 심각하여 부속서 A에 정해진 기간 내에 한국은 오염 조사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추가 조사를 위한 기간 연장을 요청하였지만 미국은 한국의 오염 조사가 지나치게 세세하다며 거부하였다. 2007년 23개 기지가 반환된 후 조사 재개를 위한 협의를 요청했지만 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하야리아 기지의 반환은 부속서 A가 아닌 JEAP 절차를 적용한 사례이다. 2009년 3월 한미 양국은 부속서 A를 대체하는「공동환경평가절차서(이하 JEAP)」를 채택하였다. 미국이 주장한 오염치유 기준인 KISE에 해당하는 지 판단하는 보강 절차로 ‘위해성 평가’ 방식을 도입하기로 하였고, 조사가 중단된 하야리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속서 A에 50일로 제한된 현장조사기간을 최대 150일로 연장하였다.
JEAP 절차는 한국법이 아닌 KISE 기준을 명시적으로 받아들인 점,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위해성 평가를 받아들인 점, 위해성 평가 결과를 미국이 받아들일지 불확실한 점, 오염이 확인될 경우 미국이 의무적으로 치유하도록 명시하지 않은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위해성 평가를 바탕으로 오염 치유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 선진적인지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나 시행 사례가 턱없이 부족하다. JEAP 합의 당시 한국이 시행한 위해성 평가 조사는 1개 사례에 불과했으며, 이를 토대로 치유한 곳은 전혀 없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 환경부는 사례가 부족할 뿐 오래전부터 연구를 진행해왔으며 미국법과 자료들을 갖고 부산 하야리아의 오염에 대한 위해성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 반환 발표에 따르면 하야리아의 일부 부지에 대한 위해성 여부에 대해 한미간 이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치유없이 반환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위해성 평가 조사 결과 확인된 오염에 대해 한국측은 KISE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미국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어느 정도가 KISE의 오염인지 명확히 합의하지 않은 채 협상을 마무리하였다. JEAP 합의 당시 한국이 위해성 평가를 위한 조사 비용만 추가 부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현실로 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하야리아의 위해성 평가 조사에 9억원을 썼고 치유비용도 부담하게 되었다.
하야리아 시민공원 조성에 대해 설명하는 허남식 부산시장ⓒ 민중의소리
왜 환경부가 아닌 외교통상부의 브리핑인가?반환 미군기지의 환경문제를 다루는 부처인 환경부는 SOFA 합동위원회 산하 환경분과위원회의 한국측 대표이다. JEAP 절차를 합의할 당시 환경부는 합의 내용을 선전하면서 하야리아 사례를 통해 위해성 평가 조사와 치유를 시행함으로서 향후 한국의 환경 정책과 제도를 바꿔나가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외교통상부 출입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만 진행되었다. 환경부 담당자가 참가했지만 환경에 대한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외교부 출입기자들도 정치, 외교 부분에 관심이 있어 환경 부분은 다루지 못했다. JEAP 합의 당시 큰 성과로 홍보된 위해성 평가와 KISE에 대한 해명은 거의 없었다.
위해성 여부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하야리아 전체 부지의 0.26% 면적에 불과하다며 아주 극미한 것으로 치부하였다. 정부 발표대로 계산할 경우 약 410평에서 610평 가량으로 가늠되는 오염된 부지는 ‘위해성’이 있는 지역이다. 위해성이란 유해한 화학물질이 노출되는 경우 사람의 건강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는 정도를 말한다. 이는 독성 물질이 인간이나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면 위해성이 낮게 나오기도 하고, 독성이 낮은 물질도 장기간 다량 노출되면 인체에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위해성 평가에서는 유해 물질이 토양섭취나 피부접촉, 농작물 섭취, 오염 지하수 섭취, 실내외 공기 흡입(비산먼지, 휘발물질 흡입) 등을 통해 인체에 노출되는 경로를 파악하고 분석한다.
정부는 오염 부지 면적이 극히 미미하다고만 했을 뿐 위해성 정도가 얼마인지 밝히지 않았다. JEAP 절차상 중요한 부분은 오염면적이 아닌 위해성 정도이다. 이를 토대로 2007년 쟁점이 된 KISE에 해당하는 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위해성이나 KISE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오염 면적이 작다고 한 외교통상부의 브리핑은 언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 일종의 트릭이다.
최악의 선례가 된 하야리아 반환외교통상부는 협상을 더 했다면 미측의 추가 치유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부산시의 강한 요청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특별히 고려하여 하야리아를 반환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야리아의 반환은 협상의 진정성, 오염과 치유 기준, 치유 비용 면에서 최악의 선례가 되었다.
먼저 한국 정부는 추가 협의를 통해 하야리아 오염 부지를 미측이 치유하도록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산시의 요구라는 이유를 들며 서둘러 반환받았다.
2006년 미국의 거절로 인해 조사가 중단된 하야리아의 위해성평가를 위한 부지오염현황조사는 2009년 7월에 시작되었으며, 8월 즉 한달 만에 마무리되었고 외국기관에 분석을 의뢰하였다. 치유 협상은 길게 잡아도 4개월에 불과하다. 2년이 넘게 걸린 23개 기지 반환 협상에 비해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JEAP 합의 후 환경부는 오염 치유로 인해 반환 일정이 길어질 것을 고려하여 미국으로부터 치유 비용을 받아 한국 정부가 정화하는 방식으로 협상할 계획이었다. 이런 계획하에 2009년 연내 반환을 목표로 협상하였지만 위해성 정도, 즉 오염 여부에 대한 이견이 생겨 치유 비용을 받아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위해성 여부를 합의하기 위한 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연내 반환이 어려워지는 데다, 오염치유 기준도 합의하지 못하는 등 협상 성과는커녕 실패의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부산시의 요청이라는 명분을 세워 오염 여부도 합의하지 못한 채 서둘러 반환받게 된 것으로 보인다.
JEAP 절차에 따른 위해도 즉 오염과 치유 기준을 합의하지 못한 채 반환받은 것도 최악의 선례로 남게 되었다.
이번 협상에서는 오염된 기지를 돌려받았다는 말보다 ‘인간 건강에 해로운’ 하야리아를 돌려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JEAP 절차는 오염물질의 존재를 넘어 인간과 환경에 노출되어 해로운 지 여부를 따지는 위해성 평가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위해성 평가 조사와 분석 결과 확인된 위해성 여부를 미국과 합의하지 못하였다. 외교통상부가 “향후 ‘여타 기지 반환에 있어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현 상태에서 반환에 합의하였다”고 밝힌 것은 실패한 협상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외교통상부는 선례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이번보다 더 나은 협상을 위한 구상은 밝히지 않았다. 23개 기지의 경우 한국법 적용에 합의하지 못한 결과 위해성 평가 방식을 도입한 KISE 기준이라는 JEAP 절차를 합의하였다. 여기에 위해성 평가에 따른 위해성 여부와 KISE에 해당하는 지도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의 부담인 치유 비용을 한국이 떠안은 것은 중앙 정부와 부산시의 갈등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외교통상부는 14일 브리핑을 통해 오염치유 비용은 부산시가 부담할 것이라고 밝힌 반면 부산시는 15일 기자회견에서 국방부가 부담한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향후 부산시와 부지 매입비용을 협의하면서 치유 비용을 다룰 계획이라고 한다. 부산시의 조속한 반환 요구에 외교통상부나 국방부가 치유 비용에 대한 모종의 조건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정화과정에서 부산시가 치유비용을 부담하거나 부지 매입비에 치유 비용이 반영되어 부산시가 매입하는 선례가 발생한다면 앞으로 반환되는 모든 기지에 적용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지금까지 반환되는 미군기지의 환경치유 비용은 국방부가 부담하고 있다. 반환 부지를 매입하는 측에서 오염 치유비용을 부담한다면 국방부로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부대 개방행사를 통해 성과를 과시하고 싶은 부산시가 면밀한 검토없이 하야리아 반환 협상에 끼어든 것이다. 부산시는 하야리아에 이어 내년부터 시작될 DRMO 부지의 반환 협상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눈앞에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한치 앞을 보지 못한 셈이다.
부산 하야리아 부대 터ⓒ 민중의소리 자료사진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 외교통상부, 의혹과 불신만 키울 뿐이번에 반환된 7개 기지의 조사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브리핑에서 환경오염 조사결과를 공개할 의향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기지가 많고 내용이 굉장히 두꺼워서 개요만 공개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본이 아닌 ‘개요’를 공개하겠다는 것도 아닌 ‘검토’만 언급된 것이다. 2007년 반환된 23개 기지의 오염조사 결과보고서는 오랜 법정 공방을 통해 공개되었다. 대법원까지 간 춘천 캠프 페이지 오염조사결과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환경조사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7개 기지는 23개에 비해 그 수가 많지 않은데다 위해성 평가라는 방식을 도입한 만큼 어떤 자료와 수치를 갖고 분석했는지 공개되어야 한다. 정보의 은폐는 국민적 의혹과 불신만 키울 뿐 한미간 협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앞으로 5년 후에나 반환될 용산기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년에 협상이 시작될 부산 DRMO(Defence Reutilization And Marketing Office 미국방부 물자 재활용 유통 사업소)와 대구 캠프 워커 헬기장(H-805), 의정부 캠프 스탠리 도로부지에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진행된 세 곳의 환경오염 조사 결과는 아주 심각하다.
부산 DRMO는 폐기물을 모아 처리해 온 곳이라 다른 지역에 비해 오염이 심각하다. 유류의 경우 TPH가 최대 18,923ppm으로 기준치의 38배이며 검출되어서는 안 되는 발암물질인 BTEX는 최대 331ppm이나 검출되었다. 중금속의 경우 수은 최대 243ppm으로 기준치의 60배, 카드뮴 최대 49ppm으로 기준치 33배, 납 최대 1,293ppm으로 기준치 13배에 이르는 등 오염도가 높고, 비소, 아연, 구리, 니켈 등도 기준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대구 캠프 워커 헬기장의 경우 유류 오염의 최고 농도가 TPH 10,183ppm으로 기준치의 20배이며 중금속의 경우 카드뮴, 비소, 아연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었다. 의정부 캠프 스탠리 도로확장부지의 경우 중금속인 아연이 최대농도 1,137ppm으로 기준치의 4배가 검출되었다.
하야리아의 선례를 보았을 때 현 정부가 JEAP 절차보다 한국에게 유리한 조건의 절차를 마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JEAP에 따른 위해성 평가 조사와 분석, 그를 토대로 미국과 어떻게 이견이 발생했는지 여부가 공개되어야 한다. 특히 하야리아 인근에 살고 있는 부산시민은 어느 부지가 ‘위해’한 0.26%에 해당하는 지 알 권리가 있다. 그들의 건강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시는 하야리아 기지가 반환되자 오는 5월 오염이 안 된 부지에 대해 부대개방 행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외국군 주둔지라는 불명예 역사를 새롭게 쓴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행사겠지만 시간적으로 오염된 부지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가 치러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0.26%에서 확인된 오염은 그냥 오염이 아니라 위해성 즉,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람에게 해를 주는 오염을 말한다. 바람에 날리거나 새나 작은 동물의 이동, 지하수의 흐름을 통해 오염이 안 된 부지로 옮겨질 수 있다.
부대 개방행사에 참가할 부산 시민들에게 부대안의 것은 아무것도 만져서는 안 되며 흙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도 안 되고 흙먼지가 일어날 경우 숨을 들이켜서도 안 된다고 충고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