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 핵잠수함, 핵항모가 들어오고 예년하고 다르게 공개적으로 무력시위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미국의 진심을 북한이 신뢰하겠나?
버시바우 :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키리졸브 연습은) 한국을 방어하는 것이 초점이지, 북한을 침략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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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후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가 열린평화포럼에 초청돼 강연을 했다.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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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일 오후 6시 서울 성공회대성당에서 진행된 '열린평화포럼(공동대표 노중선)' 세미나. 초청 강사는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 청중은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비롯한 진보진영의 학자와 종교인들이었다.
버시바우 대사와 좀처럼 대면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청중들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는 "지금 미국은 2.13 합의에 의해서 비핵화가 되면 북미관계를 개선하고 평화체제를 추진한다고 하면서도 키리졸브 전쟁연습을 하고 있다"며 "이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라도 이 연습은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버시바우 대사도 쉽게 지지 않았다. 그는 "효과적인 억지력을 위해 실질적인 위협에 대한 주기적인 훈련은 필요하다. 3-4주 전에 북한도 역시 연례적인 훈련을 했는데 강도 높은 훈련이 있었다"며 "이것을 너무 부풀려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받아쳤다. "매년 (한미군사연습에 대해) 북한이 소리를 내왔지만 놀랄 것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청중들은 주한미군 철수 문제도 강하게 제기하기도 했다.
강정구 : 미국 고위관리들은 한국이 원하면 주한미군 철수하겠다고 이야기해 오고 있다. 한국국민 62%가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고 있다는 중앙일보 여론조사가 나왔다. 그런데 평택 미군기지 이전하면서 100년 동안 머물 기지를 만드는 이유가 뭐냐?
버시바우 :한국국민이 원치 않는다면 주한미군은 하루도 있지 않을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한국 정부들이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을 원해왔다. 여론조사도 주한미군 주둔 찬성이 70-80% 가깝게 나온다. 한국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있다는 점을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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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중으로 참석한 평통사 홍근수 상임공동대표(왼쪽),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가운데), 동국대 강정구 교수(오른쪽). [사진-통일뉴스 정명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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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통일을여은사람들'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홍근수 목사도 설전에 가세했다.
홍근수 : 북한이 최근 몇 년 동안 가문과 홍수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미국과 일본의 대북 경제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취하는 이런 행동도 인도적인가?
버시바우 : 북한 체제처럼 세계에서 자국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도 없다. 이것을 제재 때문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그런 책임은 정부에 돌려야 한다. 현재도 미국은 50만톤의 쌀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북한이 감시단을 불허해 안 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쌀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앗아간 것은 북한정부의 책임이다.
홍근수 : 북한을 비핵화하기 위해 6자회담을 하는데, 6자라는 것이 한국과 일본을 빼놓고 핵보유국가인데, 북한만 들어 내놓고 비핵화하라는 요구는 무리가 아닌가. 미국은 왜 비핵화에 해당되지 않는가?
버시바우 : 북한이 핵을 보유한다면 동북아 지역은 불안정한 역학관계가 될 것이다. 또 북한은 92년 비핵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안 지켜왔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청중들과의 질의응답에 앞서 버시바우 대사는 '한반도 평화 통일에 대한 미국의 관점'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통일된 한반도는 오늘날의 남한과 비슷하길 바라고 있다"며 북한의 변화를 강조하면서, "그 이후에도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안정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정구 교수는 "통일 이후 사회체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주체적인 문제이지 외세가 왈가왈부할 성격은 아니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 <영화평> “1986년 4월 28일은 지금도 공존하고 있다” |
|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다큐 ‘과거는 낯선 나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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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사업회’는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분신 20주년을 맞아 그들을 추모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그리고 한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고 다큐멘터리는 관객들에게 20년 전 사라져간 두 열사를 만나게 한다. 두 열사를 알고 있는 관객에겐 기억을 재생시키고, 두 열사를 모르는 관객에겐 기억을 만들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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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과거는 낯선 나라다' 포스터. [출처-'과거는..'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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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에게 과거의 사건이 있다.
1986년 4월 28일, 서울대학교 앞 신림사거리에서 당시 서울대학교의 학생이었던 청년 김세진, 이재호 두 사람은 400여명의 학생들과 군사훈련인 전방입소 반대 시위도중 분신했다.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벌어진 최초의 대중적인 반미 구호였던 ‘반전반핵 양키고홈’ 을 외치며 제 몸을 스스로 불살랐던 김세진, 이재호. 이 두 청년의 선배이고, 친구이고, 후배였던 그들에게 1986년 4월 28일은 분명 흘러가버린 과거이다.
그리고 20여년이 흘렀다.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시도한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1986년 4월 28일은 흘러가버린 과거일 뿐일까?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과거란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고 있다. 또한 이 해답은 영화를 보는 관객 개개인에게 조금씩 다르게 보여지게 되는데 그것은 이 다큐멘터리가 취하고 있는 낯선 형식 때문이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1986년 4월 28일 김세진, 이재호 열사 분신 사건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과거의 흔적을 쫓아가는 다큐멘터리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존의 대부분의 추모 다큐멘터리처럼 비장한 음악, 친절한 나레이션, 그날의 자료 등을 이용해 그날의 사건을 재현하는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극적인 구성도 없다. 그동안 접했던 후일담식 영화처럼 80년대를 추억하지도 않는다.
그런 기존 추모 다큐멘터리 형식을 버리고 이 작품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인터뷰’ 다. <과거는 낯선 나라다>는 그날의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인터뷰라는 다소 생경한 방법을 통해 1986년 4월 28일을 기억해낸다.
감독은 너무 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끈질기게 인터뷰어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인터뷰어들은 망설이면서 그러면서도 침착하게 그날의 기억을 말하다 결국 그 날 그곳으로 가 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흔들리는 그들을 스크린으로 바라보는 관객 역시 인터뷰어들과 함께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한다.
인터뷰라는 생경한 방법은 그 날의 흔적을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게 찾아내어 관객이 다큐멘터리 속 인터뷰를 지켜보면서 인터뷰어 개개인과 같은 과거를 공유하게 하는 역할을 해낸다. 이것은 영화가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관객 스스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사건을 아주 객관적인 방법으로 보여주는 인터뷰가 놀랍게도 관객에게 아주 주관적인 감상을 남겨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과거는 박물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삶속에 투영되어 있다는 감독이 말한 제목의 의미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20년 전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 그리고 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두 열사와 그들의 마지막 그날을 과거가 아닌 지금 현재 속에서 만나게 해준다. 그리고 두 열사에게 미안하다고,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우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바로 두 열사를 기억하면 아플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상처까지 보듬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이 다큐멘터리는 그들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원래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시간은 흐르고 영원한 현재란 없다. 바로 이 순간의 현재도 그 현재를 말하는 동시에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 어느 누구도 이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를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법칙에 대입해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과거의 흔적은 현재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또한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1986년 4월 28일 그 시간은 20여 년 전으로 흘러가버렸지만 그날의 기억은 결코 흘러가버린 과거일 수만은 없다. 그 날은 지금도 공존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