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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후 대량 학살, 美묵인 드러나… 유가족 '울분'

6·25후 대량 학살, 美묵인 드러나… 유가족 '울분'

 

 

6·25전쟁이 발발한 직후 한국군과 한국 경찰 측은 반정부 체제에 가담할 수 있는 좌익 인사 및 이에 동조하는 이들을 집단 처형했으며 당시 미군은 이를 묵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미 '에디터엔퍼블리셔'(Editor & Publisher) 인터넷판이 AP통신을 인용해 5일 보도했다.

AP통신은 미 국립문서보관소 등지의 비밀해제 기록 등을 조사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1950년대 중반 한국군들은 처형을 위한 적절한 기소나 재판 과정 없이 무작위로 반체제 인사들을 처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또 미군 장교들은 한국군의 집단 처형을 보면서 이를 카메라에 담고 미 국방부나 국무부 등에 보고하고 이를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통신은 광범위하게 각종 조사를 벌인 결과 당시 미 극동군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한국군의 집단 처형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는 "미군이 한국군의 집단 처형을 중지시키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며 "미군은 범죄 현장에 있었으며 현장 사진을 찍고 보고서를 썼다"고 비난했다.

실제 AP통신은 1950년 7월 충남 대전 외곽 지역의 한 처형장에서 일어난 남자 수십명의 처형 현장을 미군이 사진 촬영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의 김동춘위원은 "이 현장에서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의 한국인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처형당한 후 집단으로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집단 처형으로 아버지를 잃은 한 여성은 "한국인에 대한 한국군의 집단 처형에 대해 미국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당시 대전에 주둔했던 미군 자문관 프랭크 윈슬로(81)는 A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주권국이었다"며 "당시 사건에 대한 책임은 한국에 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대량 학살 행위는 6·25전쟁 발발 후 서울이 수복된 후에도 계속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1986년 별세한 군 역사학자인 롤린스 S.에머리치는 생전에 당시 부산항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 했었다.

에머리치는 "한국군은 부산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정치 수감자들이 반정부 세력에 가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공산주의자로 의심되는 약 3500 여명을 처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한바 있으며 미군은 이를 묵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군의 한국민 대량 학살은 당시 처형당한 희생자 유가족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전해 들을 수 있다.

한국군에 의해 처형 당한 전제홍씨는 좌파주의적 성향을 가진 남동생이 북한으로 갈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월북을 도와주다가 한국군에 의해 처형당했으며 그는 재판을 받을 틈도 없이 수천명의 희생자들과 함께 처형 당했다고 전씨의 딸인 전숙자(60)씨가 말했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이 보도했다.

대량 학살 문제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금기시 되던 문제였지만 진실화해위는 이제 미군의 책임 문제와 함께 한국군의 대량 학살 문제를 조사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적어도 7000명에 달하는 한국인들이 당시 한국군의 대량 학살로 인해 대전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윤정희(62)씨는 "한국군들이 내 아버지에게 와서 좌파 그룹의 리더임을 인정하는 문서에 지장을 찍게 했다"며 "이로 인해 아버지는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그 후 처형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윤씨는 "아버지는 3년의 감옥살이 후 후 풀려났어야 했다"며 "무슨 이유로 내 아버지를 죽였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유가족들은 당시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처참한 대량 학살이 이승만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가족들은 한국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은 미국 정부의 지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미국이 처형에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탄약 등을 한국에 제공했기 때문에 대량 학살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전숙자씨는 "당시 한국은 일본에서 해방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가의 능력이 약했다"며 "대량 학살 행위에 미국이 강하게 개입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작성일자 : 2008년 07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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