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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시바우 언행에 담긴 국제정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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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지난 번 통일뉴스의 글 ‘촛불시위 현장에서 미국을 생각한다’에서 “한국현대사의 중대한 고비와 사건마다 꼭꼭 등장하는 미국의 존재를 정확히 밝히지 않는 한 한국현대사의 수수께끼를 다 풀 수 없으며, 홍준표 의원처럼 반미시위로 번질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이 되풀이 될 것이며, 소고기 촛불 시위와 같은 범국민적 저항과 항쟁의 역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이 글에 대한 댓글에서 어떤 분은 왜 그렇게 말을 빙빙 돌리느냐고 비판하셨고, 어떤 분은 ‘반미’를 선동한다고 비난하셨다.
그런데 그 글이 나오고 난 바로 다음 날(6월 3일)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면담하고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우리가 실망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I can’t deny that we are disappointed), 지난 4월의 (한-미 정부간) 합의는 국제 수준의 과학적 근거에 따른 좋은 합의로 이행을 늦춰야 할 아무런 과학적 이유가 없다, 우리(미국)는 한국 정부가 합의를 가급적 이른 시일 안에 이행하기를 바란다, 한국 국민들이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한 사실관계나 과학에 대해 좀 더 배우기를 희망한다”라는 외교관례마저도 무시한 오만 방자한 발언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을 비난하는 글들로 넘쳤고, 많은 사회단체들은 주한 미 대사관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버시바우 대사는 지난 달 21일에도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실망스러운(disappointed)’ ‘불안(anxiety)’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어제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금지’를 발언한 것이 실망스럽다. 불안을 야기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며, 외교관례를 무시한 오만불손한 정치적 만행을 자행했다. 이러한 버시바우 대사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버시바우는 한국 총독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서 ‘버시바우는 과연 누구인가? 대사인가 총독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버시바우 언행을 단순히 개인적 품성이나, 정치적 미숙성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그것을 뛰어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바로 이점이 버시바우 언행에 담긴 국제정치학이다. 버시바우 언행에 담긴 국제정치의 냉엄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20세기의 낡은 유산인 강자와 약자의 불평등 관계, 지배와 종속의 식민관계가 작동하고 있으며, 한미관계도 그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전 한신대 김상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형편은 미국과 협상을 할 주제가 아니다. 협상이란 대등한 관계일 때에도 힘이 달리는 법인데 정치 군사적으로 완전히 미국에 매여 있는 마당에 경제 하나 가지고 대등한 협상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미친 소도 웃을 짓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협상을 미국과 한 번 하려면 먼저 정치 군사적인 주권부터 찾아 놓고 하려면 해야 한다. 힘이 있는 곳으로 쏠리는 삼투작용은 물리학의 법칙이다. 그래서 힘 있는 자 앞에는 스스로 힘을 기르기 전까지는 가까이 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통일뉴스 2008.6.2 ‘미국 믿지 말라 했건만 못 말리는 MB사대주의’에서 인용)
이러한 20세기 낡은 정치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근무하고 있는 미정부당국자들의 뇌 속에는 ‘식민지 총독의식’(지배계급의 특권적 우월의식)이 뼈 속 깊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광주민중항쟁 당시 주한 미 사령관이었던 위컴의 발언을 다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위컴은 1980년 8월에 “(한국)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한국의 안보가 유지된다면 이를 한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여 전 장군을 지지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한국민은 들쥐와 같은 민족이어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 복종할 것이며, 한국민에게는 민주주의가 적합치 않다”고 폭언을 하기까지 하였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미국당국자의 이러한 시각이 30년 가까이 흐른 이 시점에 버시바우 주한미대사의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비극적이며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시각을 접할 수 있다. 한국민들은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모독하는 버시바우 대사의 언행에 분노하는 반면, 버시바우 대사는 ‘대한민국을 겉으로는 주권국가로 대접해 줘야 한다’는 점을 망각한 채, 부지불식간에 총독의식이 표출되어 자연스럽게 야당대표에게 전화로 협박하고, 국민들에게 ‘과학을 더 공부하라’고 훈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일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는 게 2008년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즉 한편에서는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을 뭘로 보고’라고 분노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대한민국이 주권국가라고?’라고 비웃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라는 외침이 절규처럼 울려 퍼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위와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기 때문이며, 그 괴리가 초래되고 있는 이유 중 적어도 하나는 미국의 존재 때문이라는 점은 부인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외면한다고 해도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눈을 감는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외면하지 않고, 눈을 똑바로 뜰 때에만 비로소 안개가 걷히면서 진실이 보이고, 해답이 열리는 법이다.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에 있어서 어떤 존재일까? 버시바우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는 현재의 한미관계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도 한국 민주주의는 꽃필 수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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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자 : 2008년 06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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