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5개국중 미국에만 ‘검역주권 포기’
ㆍ일본등 4개국엔 수입중단·반송·폐기 모두 가능
ㆍ2003·2006년 기준보다도 후퇴 '굴욕협상 증거'
한국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체결하면서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맺은 5개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미국에만 검역주권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이외에 일본·멕시코·호주·뉴질랜드와는 광우병 발생시 즉시 수입 중단 등 검역 주권이 확보된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을 맺었다. 미국에만 검역주권을 내주면서까지 '굴욕적' 협상을 한 것이라는 지적을 입증하는 결과다.

↑ 이석행 위원장(사진 오른쪽) 등 민주노총 지도부들이 2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촉구하는 노숙 농성에 들어가기 앞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진보신당은 25일 이 같은 내용의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비교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진보신당 분석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일본·멕시코·호주·뉴질랜드 4개국과는 △광우병 발생시 수입 중단 △작업장 현지 위생 점검 부적합시 수입 중지 △수입 위생 조건 위반시 반송·폐기 처분 및 수출 중지 권한 등 검역 주권을 갖고 있다.
4개국 중에서도 멕시코와의 조건은 더 까다롭다. '광우병과 비슷한 증상을 겪는 소가 발생한 경우'도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반면 미국과는 광우병이 발생해도 'BSE(광우병) 위험 통제 국가 지위'에 변동이 생길 경우만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
검역 중 수입 위생 조건 위반시 조항과 관련, 한국 정부는 일본 등 4개국과는 수출 중지는 물론 해당 축산물의 반송·폐기를 규정했다. 하지만 미국에는 1회 위반 때 개선 요청, 2회 위반 때는 해당 작업장 선적 중단 조치만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현지 점검 중 중대 위반 사항 발견시에 일본·호주·뉴질랜드·멕시코에는 해당 작업장 육류 수입을 중단할 수 있지만 미국에는 위반 사항을 통보한 뒤 미 정부의 '적절한 조치' 통보를 다시 기다려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와 함께 "과거 농림부의 기준에 비교해도 검역 주권이 대폭 후퇴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2006년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타결 이전까지 양국에 적용된 '미국산 우제류 동물 및 그 생산물 수입 위생 조건'(농림부고시 1998-75)을 보면, '수출국(미국) 정부 기관은 광우병 발생이 확인되는 즉시 한국으로의 수출을 중지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에 관련 사항을 통보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2003년 12월 미국에 광우병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는 이 조건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 제품을 수입 금지했다. '과거 2년간 구제역, 과거 3년간 우역·가성우역·럼프스킨병 발생 사실이 없어야 한다'는 고시 조항도 이번 협상을 거치면서 질병 미발생 기간 조건이 1년씩 단축됐다.
진보신당은 또 "정부는 2003년에는 EU 기준대로 내장 전체를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로 규정했는데, 이번 협상을 통해 SRM 수입 조건은 미국 수준으로 축소됐고, 혀나 설육까지 수입하게 됐다"며 "한국과 미국의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 역사는 검역 주권 후퇴, 국민 건강권 침해의 역사"라고 지적했다.
쇠고기 장관 고시 강행땐 최소 1년은 다우너 소도 못막는다
묶여있던 5300톤 내달초 유통…3%만 검역·97%는 무방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26일 또는 27일 당초 예정대로 새로운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강행키로 함에 따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새 수입위생조건이 고시되면 지난해 10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인 등뼈가 발견돼 경기 용인 검역창고와 부산항 컨테이너 야적장 등에 묶여 있던 5300t의 보관 물량부터 검역절차를 밟게 돼 다음달 초에는 LA갈비 등을 비롯한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유통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에서 SRM으로 규정된 부위가 우리나라에 수출될 수 없도록 고시 부칙에 명문화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감염 우려에 대한 불안심리를 가라앉히기에는 턱없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18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결과에 따라 우리 정부는 최소 1년간은 다우너 소(일어서지 못하는 소)를 비롯해 광우병 감염 우려가 높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수입해야 한다.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시점을 동물성 사료 금지조치 이행시점이 아닌 공포 시점(4월25일)으로 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우리 정부가 받아들인 데다 수출검역서 의무 기재사항에서 광우병 의심 소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항목도 삭제됐기 때문이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미국이 지난 21일 다우너 소의 식용 도축을 금지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조치는 입법예고를 거쳐 실제 시행까지는 1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질이 좋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돼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새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는 편도와 회장원위부(소장 끝 부분), 30개월 이상은 편도, 회장원위부, 뇌, 눈, 척수, 머리뼈, 척주(등뼈) 등 SRM을 빼고는 모든 부위가 수입될 수 있다. 또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조사(3%)밖에 할 수 없다. 특히 회장원위부의 경우 규정대로 소장 끝에서 5m를 잘라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냉동육을 일일이 녹여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샘플조사 비율을 3% 이상 확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나머지 97%는 미국 도축업자들의 '양심'을 믿고 수입할 수밖에 없다.
또 도축장 승인·취소권까지 미국에 넘겨줘 검역과정에서 SRM이 발견돼도 해당 제품을 반송하는 것 말고,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 민변 송기호 변호사는 "미국 도축장에서 위반사항을 적발하더라도 그 결과를 미국 측에 통보만 할 수 있고, 한 차례 위반사항은 현지점검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