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이 대통령 ‘수입중단 미국이 인정’ 발언 안팎
전문가 “국제규정 보장 원론…분쟁소지 여전”
야당 “한국요구 수용한다면 협정개정 나서야”통상전문가들은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관세무역 일반협정(가트) 20조’에서 요구하는 규정이 충족될 경우 우리 정부가 국민건강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처를 취할 권리를 보호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밝힌 데 대해 ‘법적 효력 없는 원론적 수준’의 입장 표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립서비스’ 수준의 성명을 “미국 정부가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수입중단 조처를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 통상전문가들 “효력 없는 발언” 평가 이 대통령이 슈워브 대표의 성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미국 쪽의 원론적인 성명 발표를 확대해석해 국내 쇠고기 재협상 요구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통상전문가들은 가트 규정을 원용한 한국의 쇠고기 수입 중단 조처를 수용한다는 미국의 성명은 국제 규정을 보장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즉, 실제로 우리 정부가 가트 규정을 원용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면 통상 마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우리 정부가 가트 조항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고 미국이 이를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트 조항을 원용해 수입을 중단하면 광우병 발생이라는 동일한 사유에 대해 새 수입위생조건과 모순되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국제법상 허용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미 쇠고기 협정문에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추가 발생으로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 지위 분류에 부정적 변경을 인정할 경우 한국 정부는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규정돼 있어, 광우병이 발생해도 가트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송 변호사는 “게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할 경우 가트 20조 규정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우리가 입증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이견이 조정되지 않으면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미국은 슈퍼 301조를 발동해 무역 보복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도 슈워브 대표의 성명에 대해 “우리 정부가 미국에서 추후 광우병이 발생해 가트 규정을 원용해 수입을 중단하면 이의 없이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발언은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정치권 “국민 불만 덮기”에 불과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권도 슈워브 대표의 발언은 “실질적인 내용이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재협상이 필요 없다는 정부의 주장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최재성 통합민주당 대변인은 “미 무역대표부의 성명은 일반적으로 가트나 세계무역기구 규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그렇다고 얘기한 것에 불과한데, 이명박 대통령이 쇠고기 파동을 피해 가기 위해 성명 내용을 의도적으로 부풀린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최 대변인은 “미국이 대통령의 말씀처럼 우리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면 협정을 통해 효력을 갖도록 바로 액션을 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이는 대통령이 확대해석해 국민의 불만을 덮어버리기 위한 임기응변이거나, 대통령이 기본적인 사안을 체크하지 않고 급한 마음에 말씀한 것 둘 중 하나다”라고 주장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도 “광우병이 발생해서 우리 정부가 수입중단을 요구해도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주장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슈워브의 발언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